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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뿌리 튼튼해야 전체 산업 튼튼해진다

[기자수첩] 뿌리 튼튼해야 전체 산업 튼튼해진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도 뿌리산업의 집합체예요. 용접, 주물, 도금 안 들어간 기술이 없죠."

지난해 뿌리산업을 취재하면서 이 산업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뿌리기업 대표는 이같이 답했다. 그는 뿌리기술이 완제품엔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제조업의 근간이 돼 국가 산업경쟁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뿌리산업의 중요성은 '뿌리'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열처리, 표면처리 등의 업종들은 나무의 뿌리처럼 겉으론 드러나지 않으나 최종재에 내재돼 근간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뿌리산업'으로 명명됐다.

하지만 강조되는 산업의 중요성과는 다르게 국내 뿌리산업의 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대다수가 영세한 중소기업이라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임금 수준이 낮아 1년 365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구구조 변화, 대·중소기업 간 일자리 양극화, 코로나19 등이 맞물려 꾸준히 심화돼 왔다. 하지만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산업의 기초체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해졌다. 한 뿌리기업 대표의 '차라리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는 푸념이 뼈아프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도 산업의 위기를 인식하고 법률 개정 및 뿌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세워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필요한 정책들은 태부족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또 다른 뿌리기업 대표는 "반도체, 바이오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좋은 산업에 대부분의 정책이 쏠려 뿌리산업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식물에서는 뿌리가 튼튼해야 잎과 줄기가 올곧게 자라는 법이다. 우리 산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이 튼튼해야 건강한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산업 뿌리를 튼튼하게 할 대책이 절실한 때이다. 지난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뿌리산업이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거듭나도록 연내 '제3차 뿌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진 않았지만, 곧 마련될 계획에선 무너지는 뿌리산업을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중기생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