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엔 매년 춘제(음력 설) 하루 전날 TV 앞에 둘러앉아 자오즈(물만두)를 함께 빚고 저녁을 먹는 전통이 있다. 굳이 TV 주위에 모이는 것은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이날 4시간여 동안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때문이다. 방송 이름은 '춘완(春晩)'이다. 한자 그대로는 '봄 저녁'을 뜻하지만 중국인들은 통상 춘제친목만찬회(설맞이 특별공연)로 이해한다. 춘완은 프로그램의 줄임말이다.
춘완은 1983년 첫선을 보였다.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이후 문화 분야 분위기도 활발히 살아나기 시작하자 이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중국 매체는 "춘완 방송이 전국 국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으며, 억만 중국인들의 설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한때 자오즈와 붉은 대련(글귀를 종이나 천에 쓰거나 대나무·나무·기둥 따위에 새긴 뒤 대문·창문에 붙이는 것)과 더불어 중요한 설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춘완은 이어졌다. 프로그램 방향은 '사상+예술+기술'로 정했다. 중국 전통문화와 현실 생활을 바탕에 두고, 현대예술 기법과 조명 기술의 혁신을 가미했다. 여기에 세계 각국 문명에서 여러 요소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춤과 노래, 만담, 소품, 희곡, 무술, 서커스 등 다양한 장르가 화면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춘완의 인기는 식어가고 있다. 요즘은 춘완을 보는 대신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외식을 하는 것으로 섣달 그믐밤을 대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세대 전환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춘완의 내용도 문제다. 개혁·개방 이래 문화와 예술의 표현방식이 다원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갈증을 충족시켜줬으나 중국 공산당의 공덕을 칭송하는 공산당 대회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있다. 한 외신은 "모두 보기 싫어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올해는 해외에서 더 주목했다. 다만 중국인처럼 40년간의 추억과는 결이 다르다. 홍콩·마카오·대만과 완전한 단일국가를 꿈꾸는 중국이 이곳 연예인과 운동선수 10여명을 무대에 내보냈는데 이들의 춘완 오프닝 합창곡이 논란이 됐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일본 애니메이션게임의 노래를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표절 대국'으로 비난받는 3대 주원인으로 보이지 않는 수갑을 채우는 정부의 문화사업 통제, 모든 자원을 한 손에 거머쥔 지도부, 베끼기를 인정하지 않는 체면 문화 등을 제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춘완 개막식 곡과 유사한 멜로디의 일본 애니메이션게임 원제목은 '뱀파이어'와 연관이 있다. 중국이 전하려던 주제는 '번영하는 신시대 중국, 나날이 새로워지는 더욱 아름다운 생활'이다. 물론 중국 매체에선 관련 소식을 찾아볼 수 없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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