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강남 개포4동 재건마을
1970~80년대 강남 개발에 떠밀려 온 주민들 판자촌 형성
2011년 화재..대부분이 샌드위치 패널 임시주택
두 차례 개발 계획에도 논의 더딘 상황
재건마을 초입부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길없음' 표지판과 샌드위치 패널 주택들 /사진=박지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포이근린공원 뒤편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없음'이라는 표지판을 마주하게 된다. 5일 이곳에서 만난 인근 주민들은 표지판을 보고는 가던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표지판 뒤로는 또 다른 마을이 펼쳐져 있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집 수십 여 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군데군데 나무·슬레이트·합판 등으로 만들어진 판잣집들도 눈에 띈다. 주소 '개포로25길 32'를 모든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이곳은 '재건마을'이라 불린다.
재건마을은 1970~80년대 당시 영동대교 등에 모여 살던 빈민들이 서울 강남 개발 과정에서 강제로 떠밀려 옮겨오면서 형성된 판자촌 마을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40~50년 이상을 동고동락해 온 사이로 강남구청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58가구만이 남아있다. 지난 2011년 재건마을에서 대형 화재가 난 뒤 서울시는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 재건마을의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여전히 논의는 더딘 상태다. 대부분 주민들은 일용직 아르바이트나 다달이 나오는 기초연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5일 방문한 재건마을 /사진=박지연 기자
■판자촌 화재, 12년 전 재건마을에도
이날 재건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지난달 20일 60여 세대 소실 피해를 낸 구룡마을 화재가 '남 일 같지 않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재건마을 역시 과거 '떡 솜'으로 불리는 단열재와 비닐·합판 등 불이 붙기 쉬운 소재로 된 판잣집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6월 발생한 대형 화재로 마을의 96가구 중 74가구가 불에 타버렸다. 당시 지자체는 재건마을이 시유지에 해당하므로 화재 복구 지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주민들은 그 뒤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샌드위치 패널 소재 임시 주택을 직접 새로 지어 살고 있다.
마을에서 30년 넘게 거주해 온 60대 A씨는 "원래는 진흙을 덕지덕지 발라 세운 이른바 '하꼬방'(상자를 뜻하는 일본어 '하꼬(はこ)’에 방을 붙인 말) 형태의 판잣집이 즐비했다"며 "현재 마을의 샌드위치 패널 집들은 전부 과거 화재 피해를 입었던 곳이라 보면 된다"고 전했다.
샌드위치 패널 소재 주택도 추위나 화재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을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탓에 등유 보일러 등에 기대 겨울을 나고 있지만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한기는 매섭기만 하다.
70대 주민 B씨는 "최근 기름 값도 크게 올라 난방 떼는 게 버겁다. 집 안에서도 솜패딩을 입고 있다"며 "전기장판 하나만 틀고 생활하기도 부지기수다. 너무 오래 틀어 전기 스파크가 튀지는 않을 지 때때로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재건마을 주민들이 지난 2012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재건마을 공영개발 계획 규탄대회를 벌인 모습 /사진=Fn DB
■도심 개발에 떠밀려 온 주민들
재건마을 주민들은 1970~80년대 강남 개발의 그림자다. 개발에 떠밀려 갈 곳을 잃었던 주민들은 집값이 싸다고 입소문 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90대 주민 C씨는 "1970년대 강남 대규모 개발로 기존 거주하던 사당동 집이 철거된 뒤 재건마을로 터를 옮겼다"며 "40년 가까이 천막을 치고 살았다"고 회상했다.
주민 A씨는 "객지 생활을 하던 중 함께 어울리던 형들이 '개포동 일대가 월세가 싸다더라'는 말을 듣고 세 들어 살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 전"이라며 "이곳 주민들은 이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고 덧붙였다.
하루 벌이는 만만치 않다. 주민 대다수가 철거업이나 건설업, 일용직 등에 종사하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가구는 매달 나오는 기초연금에 기대고 있다.
재건마을에 거주한 지 29년이 됐다는 70대 주민 D씨는 "막노동도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시켜주지 않아 기초연금 32만원이 월 수입의 전부"라며 "오후 내내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재건마을에 대한 개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화재 직후인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 재건마을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두 계획 모두 '임대주택 공급'을 골자로 한다. 2012년은 국민임대 82가구·장기전세주택 234가구를 공영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의 경우 임대주택 60가구 및 신혼희망타운 300가구 공급 계획을 또다시 꺼내들었다.
하지만 개발 논의는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재건마을 주민들은 지자체와의 논의 현황에 대해 입을 떼기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주민은 "아직 관련 문제가 결론나기 전이라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적극적인 진척을 위해 노력 중인 상황"이라고만 상황을 설명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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