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체제 독점 구조 깨려면 중대선거구제·비례대표제로 가야”
“중대선거제에선 집권당이 과반 못 넘겨…대통령제서 연립 정부라니”
“국회의원은 선거제 개편 논의서 손 떼야…이해 당사자 참여는 곤란”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파이낸셜뉴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전문가 그룹에서는 거대 양당 체제를 깨기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필요성과 비례대표제 강화 등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다만 이런 개편 방향은 현행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과연 다당제가 정치 개혁의 상징처럼 긍정적이기만 할 것인가에 의문을 품는 회의론도 있었다.
우선 현 선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대 양당 체제 독점 구조를 유지·강화하는 것이라는 진단이 제기됐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본지에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균열 구조를 바탕으로 이념과 세대, 계층 등 모든 갈등 구조가 거대 양당 체제 독점 구조 안에 편입돼 있다”며 “그 결과 언제 어디서든 선거 구도는 기호 1번과 2번의 대결로 압축된다”고 지적했다. 제3당이나 소수 정당 등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없기에 대화와 타협의 의회 정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한국 사회가 선진국이 되면서 훨씬 다변화·다원화됐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 많이 생긴 것”이라며 “그런데 정당이 (사실상) 두 개밖에 없으니 그 의견을 다 수렴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부동층·중도층이 굉장히 많으면서도 이렇다 할 중도 정당이 없고 투표 불참자도 많은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거대 양당 체제 독점 구조를 해소하려면 대안적 선거제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중대선거구제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비례대표 확대도 보완책으로 꼽혔다.
박 교수는 “한 선거구에서 3~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면 제3당 후보나 소수 정당 후보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칫 양당 후보가 전 지역구에서 모두 당선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100석 이상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선거는 지역구에서 의석이 많지 않은 제3당, 소수 정당 등이 원내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독일식 연동형 비례제 원칙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이 평론가도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더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위성 정당’ 사태 방지책이 꼭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전문가들은 또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국회의원 세비 감액 등을 필수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이 평론가는 “정수를 확대하려면 의원 세비부터 일단 반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은 의원 혜택이 너무 많다”며 “유럽의 경우에는 학교 교사가 의원과 페이가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 의원에게는 거의 미국 상원의원급 대우를 해 준다”고 강조했다. 숫자를 늘리는 것은 좋지만 일단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병 교수도 “세비는 감액하면서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는 현 대통령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나왔다.
김형준 명지대 특임교수는 “선거 제도를 얘기할 때 제일 큰 원칙은 권력 구조와의 조응성”이라며 “대통령제인 나라 중 중대선거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곳은 거의 없다. 대통령제와 조응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제에서는 소선거구제, 내각제에서는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다당제를 만들어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소선거구제 하면 무조건 승자 독식, 정치 양극화 주범 등 프레임을 뒤집어쓴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제에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중대선거제를 했을 때 집권당이 과반을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그러면 그것이 정국 안정을 가져올 수 있나. 대통령제를 하면서 연립 정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안정성을 가져오나”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제도 변화가 가져올 정치적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먼저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일본이 중선거구제를 하다 보니 복수 공천 때문에 당내 계파 정치가 너무 심화돼 1995년 2~6인 중선거구제를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꾼 점 등을 예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선거구제 변경 등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현재 국회에서 이뤄지는 선거제 개편 논의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입을 모았다. 박상병 교수는 “이번에도 용두사미나 꼼수 개편 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차원 전문가 위원회 등을 제도화해 제3의 기구에서 선거법 개혁을 이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선거제 개편을 온전히 국회의원 손에만 맡겨선 진정한 개혁이 어렵다는 말이다.
이종훈 평론가도 “점진적으로 도입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한두 군데 정도 중대선거구제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격전지를 중심으로, 서로 나눠 먹는 식으로 거대 정당이 또 꼼수를 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준 교수도 “일본에서 선거제를 바꿀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시뮬레이션과 검토”라며 “지금 우리는 주먹구구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일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들이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라며 “선관위처럼 독립적인 곳에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영국 같은 데서도 선거구 획정을 당에서 못하고 선관위에서 하게 바꿨다. 스웨덴은 선거제 개혁을 한다든지 하면 이해 당사자는 각 정당당 한 명밖에 참석하지 못한다”며 “외부 전문가들이 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 개혁 논의에서 이해 당사자가 손을 떼지 않으면 합의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glemooree@fnnews.com 김해솔 정경수 최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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