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송파구 화훼마을
마을 옆 교통량 많아 먼지·매연 유입
거주 노인들 기관지 질환 달고 살아
작년 여름 폭우에 침수피해 겪기도
울타리 너머로 쓰레기 투기도 빈번
9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을 둘러싼 울타리에 '무단투기 단속중' 안내문이 붙어있다. 위쪽사진은 화훼마을 전경. 사진= 주원규 기자
서울 송파구 장지동 남쪽 끝. 바로 앞 경기 성남시와 도시고속도로 진입로를 바라보고 뻗은 8차선 교차로에는 화물차와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송파와 성남을 잇는 다리의 이름은 복정교. 그 아래로 용인시에서 발원해 성남을 거쳐 한강으로 유입되는 탄천이 있다. 인도 옆 울타리 너머 탄천을 낀 저지대에는 7486㎡ 규모의 '화훼마을'이라는 판자촌이 있다. 이곳은 1980년대 초 잠실아파트 개발로 쫓겨난 철거민들이 주거용 비닐하우스를 치고 정착하면서 형성됐다.
마을 이름은 꽃을 키우던 화훼단지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주민들에 따르면 이주할때부터 '뻘건 녹물'이 나와 꽃을 키우기는 커녕 식수를 멀리서 길어 마셨다고 한다. 거주자는 주민등록 기준 180여세대 260여명 정도다. 상시 거주민은 약 80여가구. 다닥다닥 붙은 합판 소재의 집 지붕 대부분은 검은색 차광막으로 덮여있다. 햇빛과 한기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하나둘 치다 보니 마을 전체가 '검은 지붕'으로 뒤덮이게 됐다.
■'꽃 피지 않는' 마을
이곳 주민들의 삶은 먼지와의 전쟁이다. 8호선 복정역 바로 앞에 위치한 데다 시의 경계에 있는 바람에 교통량이 많아 각종 먼지와 매연이 마을로 유입된다. 60대 이상 노인들은 기관지 질환을 달고 산다. 기침을 쿨럭이던 주민 이모씨(69)는 "매일 집을 닦아도 걸레가 까맣게 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1980년대 이곳으로 쫓겨와 3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사고로 목을 크게 다치고 일도 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역대급 폭우가 화훼마을을 덮쳤다. 마을 전체가 침수돼 주민들은 모두 일주일 동안 호텔에서 임시 거주했다고 한다. 조모씨(61)는"똥물이 역류해 집에 가득 차 집기와 가구를 모두 버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구청과 복지단체 등의 도움으로 수해를 복구했지만, 유난히 추운 겨울도 고역이었다. 상시 거주 가구 80가구 중 가정용 LPG 가스보일러를 이용하는 집이 60가구가 넘는다. 50대 주민 박모씨는 "가스 한 통에 5만원이 넘는데, 불을 때면 3~4일이면 다 쓴다"며 "아끼고 아껴 한 통으로 일주일 나고 전기장판에 들어가 있는다"고 말했다. 2월 LPG 가스 값이 올라 3월에 반영될 예정이라 주민들의 시름은 한층 깊어졌다.
■화재 걱정에 잠 못 드는 밤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큰 화재가 나자 화훼마을 주민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화훼마을은 지난 2006년에 화재를 겪었다. 불 붙은 LPG 가스통이 연쇄폭발하며 마을의 주거용 비닐하우스 70% 이상이 전소되는 일이 있었다.
마을 울타리 너머로는 지나는 행인과 운전자들이 담배꽁초를 던진다. 언제 화재가 날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쓰레기를 울타리 너머로 무단 투기하는 일도 잦다. 곳곳에 '무단 투기 금지' 등의 경고문이 붙어있지만 밤에는 보이지 않는다. 성인 남성 키만한 울타리 때문에 마을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화훼마을은 지난 2019년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이 참여한 '복정역 환승센터 복합개발' 계획에 포함돼 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주민들은 기대하는 눈치지만 "이렇게 계획에만 포함되고 실제로는 무산되는 일이 많았다"면서 속단하지 않는 분위기다. 주민 박씨는 "여기 주민들은 분양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람이 살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곳이 어서 빨리 재개발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