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국 텍사스 석유가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흐름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5월 18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이글포드 셰일유전. 로이터뉴스1
미국이 국제유가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자국에서 생산한 석유는 모두 미국 내에서 사용하고, 여기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석유를 더 수입했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석유 수출 대열에 합류한데 따른 것이다.
이미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유종에 텍사스주 미들랜드 유종이 포함됐고, 6월부터는 브렌트유 가격을 산정할 때 미국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포함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이 석유수출을 확대하면서 국제 유가를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미 석유수출, 사상 최대
미국산 석유 수출은 사상최대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 그룹에 따르면 지난 8일 텍사스 석유수출 붐의 핵심 지역인 휴스턴과 미들랜드의 석유 스와프 거래 규모가 사상최고를 찍었다.
미국 석유 기준물인 WTI가 미 유가 기준에 머물지 않고 국제 유가 흐름까지 좌우하고 있다는 뜻이다.
셰일혁명을 토대로 석유수출 금지 조처를 해제하면서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장한 미국의 석유수출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에 들어가면서 탄력이 더해졌다.
그동안 러시아 석유에 의존하던 유럽이 미국의 석유수출 물량에 더 크게 의지하게 됐다.
WTI, 영향력 확대
CME그룹 에너지·환경제품 글로벌 책임자인 피터 키버리는 WTI가 "전세계 (석유시장에서) 한계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석유가 됐다"고 말했다.
키버리는 WTI는 미 시장에만 극도로 초점을 맞춘 국내용 석유에서 이제는 국제적인 영향을 갖는 유종이 됐다고 덧붙였다.
WTI의 영향력이 확대된 결정적 계기는 2015년 석유수출 재개였다.
셰일혁명으로 석유 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자 미국은 그동안의 석유수출 제한을 풀어 자유로운 수출을 허용했다.
셰일혁명의 핵심 지역인 퍼미안분지는 이후 미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 수출 물량이 더 많아졌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1일까지 1주일 간 미 석유수출은 하루 510만배럴에 이르러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석유수출 규제를 해제했던 당시에 비해 수출물량이 약 10배 폭증했다.
WTI 수출물량이 급격히 늘면서 관련 헤지, 선물,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올들어 CME그룹이 관리하는 시장에서 휴스턴, 미들랜드 지역 석유에 연동된 WTI 하루 거래 규모는 1년 전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브렌트, 6월부터 WTI도 포함
그동안 국제유가 기준물 역할을 해 온 브렌트유의 공신력은 흔들리고 있다.
세계 석유수출 시장에서 미 WTI 물량이 크게 늘면서 북해에서 생산되는 석유 가격을 중심으로 한 브렌트가 실제 국제 석유시장의 가격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과 노르웨이가 생산하는 석유 5종의 가격을 좇는 브렌트는 그동안 월스트리트에서 국제유가 기준물 역할을 했지만 최근 이 지역 산유량이 급격히 쪼그라들면서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상품인사이츠 자회사로 석유 가격을 발표하는 대행사 플랫츠는 이에따라 실제 석유가 거래되는 시장의 움직임을 더 잘 반영하도록 브렌트 유종 배스킷을 재구성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미 미들랜드산 석유가 노르웨이 연안 요한스베르드루프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를 밀어내고 브렌트유 유종에 포함되기도 했다.
S&P글로벌 상품인사이츠의 시장보고·거래솔루션 부문 책임자 데이브 언스버거는 "유럽 정유사들이 (미들랜드 석유를) 좋아한다"면서 "중국 정유사들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플랫츠는 6월부터 브렌트유 가격을 산정할 때 유럽에 수출되는 WTI 가격을 반영하기로 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