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정서 상대방 내심 입증 어렵다"
도입검토 원점 됐지만..논쟁 다시 불붙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거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성차별적 사회구조 아래 성폭력 문제는 여성에게 더 취약하다."
"남자를 잠재적 성폭력자라고 대못을 박고 있다. 지금도 사실상 동의를 구하는 물음이나 제스추어까지도 여성이 성폭력으로 규정해 신고하면 어떠한 대항권도 인정되지 않고 남성은 모든 인격적, 사회적 지위가 박탈되고 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 논쟁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비동의 간음죄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9시간 만에 철회한 것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일단 정부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다시 입장을 정리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비동의 간음죄를 찬성, 반대하는 측은 각자의 이유를 내세우며 젠더갈등을 유발하는 모양새다.
"동의 없이 성적 침해 발생하면 강간죄 성립 안돼"
비동의 간음죄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 등으로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서 정치권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형법 297조는 강간을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성관계로 규정한다. 최근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과 협박 기준을 완화하는 법원 판례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최협의설'을 바탕으로 폭행과 협박을 좁게 해석해 범죄 여부를 따진다. '피해자의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강력한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반면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면 폭행·협박이 없었다 하더라도 상대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강간으로 보고 처벌이 가능해진다.
비동의 간음죄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현행 강간죄의 경우 폭행·협박을 필요로 해 상대방의 동의없이 성적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현행법상으로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입법적 공백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판례에서 폭행·협박의 정도를 완화하는 경향이 나타나지만 명시적 판례변경은 없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이 비일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간음 입증 책임, 피고인에게 전가 우려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과 악용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반대쪽에서는 이미 현행법상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의 경우에도 심신미약, 위계·위력간음죄, 강제추행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어 입법공백이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동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우려한다. 상대방의 주장만으로 처벌 여부가 결정될 수 있어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상대방이 성관계를 할 당시에는 동의했더라도 이후 마음이 변했을 때 그 변심을 수사기관이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 8일 국회 사회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범죄를 의심 받는 사람이 상대방 동의가 있었다는 것을 법정에서 입증하지 못하면 억울하게 처벌 받게 되는 구도가 된다"며 "상대방의 내심을 파악하고 입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의에 대한 입증 책임이 검사가 아닌 피고인에게 전가된다는 우려도 있다.
문성호 국민의힘 대변인은 "검사에게 입증 책임이 주어지지 않고 피의자에게 입증 책임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며 "형소법상 큰 원칙 중 하나인 검사의 입증 책임이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법리적으로 상황을 증명할 역량이나 권한을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이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고 지적했다.
여가부-법무부 원점에서 다시 검토
비동의 간음죄 도입 주무 부처인 여가부와 법무부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원점에서부터 법 도입 여부를 다시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자리잡고 있는 추세이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2006년 제2차, 2017년 제3·4·5차에서,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제7차, 2018년 제8차 최종 견해에서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할 것을 권고했다. 2021년 유엔인권이사회도 강간에 관한 입법모델(프레임워크)을 채택하고 국가는 강간 정의의 핵심에 동의 없음이 포함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장관은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된 나라들을 거론하며 "우리나라는 성범죄 죄명이 150개로 처벌 법규가 꽤 촘촘하다. 이런 나라들과 다르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건설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여가부는 지난달 26일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통해 비동의 간음죄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법무부가 개정계획이 없다고 반박하고 여권에서 거센 반발이 나오자 같은 날 저녁 '개정 계획이 없다'며 입장을 철회했다. 여가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공문을 통해 관련 의견 수렴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당시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해 성폭력범죄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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