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테라포밍 정치학
‘공존 대신 말살’ 유럽 식민지 정책
지구 표면의 25% 급격히 바꿔
우주는 개척대상이라는 ‘테라포밍’
생태계 파괴로 기후위기 ‘부메랑’
게티이미지뱅크
오늘날 인류는 미래의 삶이 정녕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할지도 모를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 기후위기재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1인당 탄소 배출 규모를 말하는 탄소발자국은 점좀 거세지고 거침이 없다. 경제성장이라는 인간의 뇌를 마비시킨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기후위기에도 그 존재감은 여전하다.
신기술로 기후위기를 축소하거나 해결할수 있다고 믿는 신념도 강고하다.
그러나 지금껏 인류를 지탱해온 현재의 운용체제는 그 한계가 노출되며 종말을 향해 돌진 중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성장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한 기후위기는 일시적이거니 자연적으로 회복될수 있는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상상을 초월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부국의 삶과 그렇지 못한 빈국이 동일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보편적 기후위기론은 진실을 감추고 기후를 추상화해 자칫 위기의 실체를 가려버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기후위기는 단지 탄소배출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가 아니다. 지구라는 삶의 무대가 이제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비극과 공포의 문제다.
■미개척지, 그 무한한 욕망을 향해
인류 역사는 미개척지를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이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은 풍요로운 땅과 숲을 갈아엎고 개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남미 대륙은 물론 동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풍요로운 대지는 이들의 발굽에 짓밟히고 뭉개졌다. 인디언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이들의 절멸 정책에 의해 대부분 멸종하거나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데 그쳤다. 원주민뿐만이 아니다. 대지에서 살아가던 온갖 종류의 동식물들도 자취를 감췄다.
유럽인들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는 인류의 흑역사다. 흑역사는 '테라포밍'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동되고 확산됐다. 테라포밍은 현재의 지구를 만든 정치학이자 인류학이다. 땅을 만든다는 의미의 테라포밍은 유럽인들의 정복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제노사이드를 부추겼다. 평화롭게 공존하던 대지와 인간 그리고 동식물들은 이들에 의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테라포밍은 미개척지를 개간함으로써 자신들의 욕망에 맞게 대지를 배치하고 구획지으면서 지구를 항폐화시켰다. 여기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대응은 살육과 처벌, 추방으로 이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직접적인 절멸 정책보다는 이들이 더 이상 살지 못하도록 주변 대지를 황폐화시키고 공존하던 동물도 절멸시키는 간접적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원주민들이 생존할 수 없도록 주변 환경을 말살하는 총체적 폭력 행위다. 이 같은 직간접적 폭력과 수탈을 통해 정복지의 깃발을 꽂은 유럽인들의 행위는 오늘날 거대한 기후위기와 재난, 바이러스 창궐 등을 유도했다. 기후위기는 미개척지를 자신의 욕망에 따라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에서 연유한다. 자연 생태계 속에 질서잡힌 채 잘 기생하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이들이 인간세계로 침투함으로써 이른바 인간과 바이러스 간 전쟁이 공식화됐다.
인도 소설가 아미브 고시가 쓴 '육두구'에서는 테라포밍 네러티브는 제국적 수사와 이미지에 크게 기댐으로써 우주를 정복하고 식민화해야 할 미개척 영역으로 삼는다고 비판했다. 이 개념이 후에 '정착형 식민주의' 경험에 깊이 뿌리내려 유럽 사회에 매력적이고 호소력을 지닌 수사로 광범위하게 자리잡게 된다. 식민화와 정착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것이다. 다른 제국과 달리 유럽에 의한 식민화는 전 지구 표면의 25% 이상을 급격하게 바꿔놓은 그에 수반된 환경변화의 규모와 속도였다. 고시에 따르면 유럽인이 유럽식 생활방식에 맞게 방대한 면적의 토지를 유럽 모델과 흡사하게 재설계한 곳은 북미 대륙이다. 수천년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생활방식을 훼손하고 말살하는 과정이 이뤄졌다. 이런 테라포밍 프로젝트는 갈등을 유발하고 그 자체로 독특한 유형의 전쟁을 일으켰다.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닌 환경적 개입과 비인간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이한 전쟁이다. 테라포밍 전쟁은 말 그대로 인구 전체가 대규모 생물학적 생태파괴를 포함한 폭력형태에 시달리는 생물정치적 전쟁이었다.
이처럼 말살전쟁을 동반한 환경의 무기화가 생물정치적 전쟁의 주요소로 작용했다. 정착형 식민주의적 분쟁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이전 전쟁과 차원이 다른 전쟁이다.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따라 비인간존재로 분류되는 토착민과 온갖 환경 요소들은 역사나 정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할 무대를 빼앗겼다. 기껏해야 특정한 생태환경 속에 놓인 비활성 요소로 취급될 따름이다.
■우주개척 또 다른 '네오유럽'
북남미에서 유럽인의 정착은 황무지로 인식되던 영토를 유럽인의 생산적 토지 개념에 맞는 영토로 탈바꿈하는 것이 핵심 기제다. 이런 개념은 유럽인의 정복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틀짓기로 이 속에서 풍경은 공장으로, 자연은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같은 자원으로서의 세계라는 시각 중심부에는 억제할수 없는 과욕이 싹트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옴니사이드(생물의 절멸)라는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특정 자원의 희소성을 높이고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그 나머지 자원은 절멸해야 하는 옴니사이드는 진화론을 통해 더욱 번성한다. 진화는 인간과 동식물의 동류관계를 공고히 해준 것이 아니라 단 한 종류의 인간 즉 백인우월주의와 예외주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진화는 다른 모든 인간 및 비인간존재 위로 이 최고종족을 끌어올리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인간의 이런 무모한 시도는 기후변화와 위기의 시대를 맞아 유탄을 맞고 있다. 지구의 보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렇지만 자연재해의 강력한 보복 속에서도 자원을 매개로 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석탄과 석유에 대한 갈망은 따지고보면 권력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화석 연료에 대한 인류의 끊임없는 추구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유지시켜주고 강화해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에 대한 통제권이 곧 세계의 통제라는 법칙 앞에서 모든 기후위기의 경고는 무력하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일수 있는데도 이를 기술적 한계로 치부하며 미루는 것은 석유를 고리로 한 지정학적 권력구조의 유지에 다름 아니다. 즉 화석연료는 지금의 세계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접착제다. 여기서 균열이 발생하면 세계 체제의 패러다임은 순식간에 바뀐다. 재생에너지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채굴하고 수송하고 저장하는 일련의 값비싼 비용과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사용할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원 탐욕이 열어젖힌 존재의 침묵
미국과 유럽이 식민지를 수탈하는 과정은 끝난 게 아니고 내용과 형태만 바뀌었지 현재진행형이다. 공통적인 것은 특정 자원을 상품화하면서 그 이익을 독점화할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영속화시키는 행위다. 그 밖의 자원은 절멸시켜 다른 대안의 싹을 잘라내는 폭력적 세계관이 판을 치는 것도 그래서다.
식민지화는 그저 인간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과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행위주체성, 의사소통능력, 의미를 추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온갖 존재, 즉 동물·나무·화산을 정복하고 그들을 침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침묵의 강제 과정은 경제 추출 과정에 더없이 중요했다. 뭔가를 자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면 그것을 야수의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식민지 지배자들은 노예 하인 상품으로 써먹기 위해 그들을 자원에 불과한 존재로 바꿔놓고 인간 및 비인간 존재의 연속체를 야수라고 표현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연속체 전체는 특정 종을 멸종이나 말살로 내모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제시됐다.
기후위기는 지나간 과거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과거에 대한 고찰 없이는 지구위기를 이해할수 없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그저 한때 지나가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는 낙관적 시각이 비극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이처럼 추락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전 세계가 식민지적 추출과 소비방식을 채택하고 지속시킴으로써 엄청난 재앙의 가속화를 유발했다는 사실이다.
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 에디터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