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4년 11월20일(현지시간) 미 보스턴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에서 열린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병원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자택에서 호스피스 보호에 들어갔다고 카터센터가 밝혔다.
지난 18일(현지시간) AP통신과 BBC 등 외신은 올해 98세로 역대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장수 중인 카터가 “남은 시간을 자택에서 가족들과 보내기로 결심”했다며 그러나 무엇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카터의 손자 제이슨 카터 전 조지아주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조부모 모두가 늘 그랬듯이 평안하며 이들의 가정은 사랑으로 넘친다”라고 썼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8월 간에 암이 발견돼 제거했으며 신약 덕분에 추가 치료가 필요없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해 건강 악화에도 놀라울 정도로의 차분함을 드러낸 카터는 “무엇이 닥치든지 다는 완벽할 정도로 마음이 편하다”며 “나는 즐겁고 모험적이고 감사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카터 대통령 내외는 지난 2021년 결혼 75주년을 맞았다.
민주당 소속인 카터는 지난 1977~81년 미국 대통령을 지냈으며 당시 외교 정책과 관련해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는 198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하면서 재선에 실패했다.
1924년 조지아주에서 출생한 카터는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0년대 주 상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에 입문했으며 1971년 조지아 주지사에 당선됐다.
1976년 대선에 출마했으며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당시 카터의 후보직을 가장 먼저 지지한 상원의원 중 한명이었다.
카터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누르고 39대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당시 석유위기에 따른 높은 물가상승과 실업에 직면했다.
외교에서는 1978년 적대적이었던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는데 기여했으며 파나마운하를 파나마에 반환하는 조약에도 서명했다.
그러나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이 축출됐으며 그해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이 이란 학생들에게 점령돼 직원 66명이 인질로 붙잡히는 시련을 맞았다.
카터는 이란과 단교를 선언하고 무역 금수 조치를 내렸으나 미국민들은 카터가 이란에 나약한 것으로 인식돼 지지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우기 1980년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군사 작전마저 실패 미군 8명이 사망하면서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급락했으며 인질 사태는 카터가 이임하던 날까지 444일간 이어졌다.
카터는 대통령 퇴임후 부인 로절린 여사와 함께 주택 건설 등 인도주의 봉사 활동을 이어갔으며 평화를 위한 중재자로 활동했다.
1994년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북핵위기 당시 평양으로 김일성 주석을 만났으며 김정일과의 회담을 통해 국제사찰단 조사 허용, 남북 정상회담, 비무장 지대 전진배치된 군대의 철수 등에 합의하면서 위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카터는 내전 중이던 보스니아의 휴전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두고 인권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카터는 당이 다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와도 자주 접촉해 2018년 북한 관련 브리핑을 받은 후 트럼프 행정부를 대표해 방북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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