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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북한이 ‘슈퍼 갑’인 남북 경협

[구본영 칼럼] 북한이 ‘슈퍼 갑’인 남북 경협
쌍방울그룹의 800만달러 대북송금 사건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김성태 전 회장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위해 북한에 달러를 전달했다'고 진술하면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 대표는 "검찰의 신작 소설"이라고 부인했었다. 하지만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실에 입각한 다큐멘터리"라고 맞받았다.

이런 진실게임의 결말을 예단하기 어렵다. 검찰의 추가 물증 확보와 재판 결과 등 변수가 많아서다. 분명한 건 남북경협의 일그러진 실상이 새삼 확인됐다는 사실이다. 경기도와 쌍방울의 2인3각 대북사업이 삐걱거린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김 전 회장, 북한 측 인사들 간 2019년 중국 선양 회동이 이를 보여주는 단면도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송명철 북한 조선아태위원회 부실장이 이 전 부지사에게 "경기도가 무슨 낯으로 왔느냐"고 소리를 질렀다니 말이다. 북한 스마트팜 사업 명목으로 500만달러를 내기로 한 경기도가 도의회의 반대로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자 이렇게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남북경협에서 주객이 전도됐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자. 돈을 지원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게 상례가 아닌가. 북측이 경제지원을 하려는 남측에 되레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면 정상적 상거래일 순 없다.

북측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남측이 절절매는 행태는 문재인 정부 때 수시로 벌어졌다.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가 그랬다. 북한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수행한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대놓고 타박했다. 그는 같은 해 평양 고위급 회담장에 3분 지각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주인 닮아서 저렇게…"라고 면박을 줬다.

이처럼 갑과 을이 뒤바뀐 남북경협 구도는 남한 정권의 자충수였다. 교류를 늘려 관계를 천천히 개선하려는 순수한 동기보다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조급함이 앞섰던 탓이다. 정상회담 등 '평화 이벤트'에 집착하면서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정상회담 대가로 현대상선을 통해 4억5000만달러를 북한에 줬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방북을 원하는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북측이 모종의 대가를 요구했으리란 추론도 가능하다. 이를 쌍방울이 대납했는지 여부는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하겠지만….

정경분리 원칙을 저버린 경협이 지속가능할 리는 없다. 애초 경제를 살리려면 남한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민간교류가 늘면 세습독재 체제가 흔들린다는 게 북한 정권의 딜레마다. 그런데도 남한 정권들이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기업의 등을 떠민 대가가 뭔가. 기업들이 대북투자금만 날리기 일쑤였다. 북한 정권이 보여주기식 당국 간 회담에 매달리는 남한 정부를 빚쟁이 취급하며 역이용한 결과였다.

시장경제 체제 서독 정부도 동·서독 통일 때까지 사회주의 동독 정부와 교류협력을 지향했다.
다만 투자 여부는 민간의 경제논리에 맡겨 우리처럼 기업이 리스크를 떠안는 일은 없었다. 정부 차관을 제공했지만 무조건 퍼준 게 아니라 동독인의 서독방송 시청, 서독방문 확대 등과 철저히 연계했다. 서독 정부의 이런 엄격한 정경분리 원칙이 통독의 원동력이었음을 직시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