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선 약 2000명을 고용할 대만 TSMC와 소니가 합작한 반도체 공장 건설이 한창이다. 지난 2021년 일본 정부가 TSMC 반도체 공장을 유치했다고 발표했을 당시, 반도체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삼성전자나 TSMC가 4나노미터(㎚=10억분의 1m)를 만들고 있는 판에 이제 와서 '반도체 굴기'를 하겠다며 5조원을 외국기업에 퍼준 결과가 22∼28나노미터의 옛날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헛돈' 쓰는 것이란 거센 비판을 뒤로하고 일본 정부는 TSMC를 위한 사실상의 전용 지원법까지 속전속결 처리했다.
약 1년이 지난 최근 이 얘기가 처음 세간의 평가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일본 재계의 '드림팀'이라 할 수 있는 도요타·소니 등 8개사가 2나노미터 반도체를 만들겠다며 '라피더스'라는 차세대 반도체 회사를 공동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타국의 일자리와 투자를 빼내가기 급급했던 미국도 일본에 반도체 공동연구 거점을 만들겠다고 했다. 여기에 TSMC까지 일본에 두번째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 일본 정부를 반색하게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생큐 삼성, 생큐 현대차"를 외친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헝가리는 SK, LG 등의 조단위 투자에 쾌재를 부르고 있다. 불과 1년여 전 코웃음 쳤던 일본의 TSMC 유치건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이유다.
미국에 투자계획을 밝힌 기업들 얘기를 들어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전기차 충전기조차 '미국에서 만들라'고 엄명을 내린 데다 보조금을 후하게 얹어주니 '안 갈 이유가 없다'"고 한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로부터 이미 2조원 넘는 인센티브를 지원받기로 했다.
세율은 높고, 지원은 빈약하고, 노조는 세니, 이렇다 할 외국기업들은 한국 투자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운만 띄우다 간 테슬라가 대표적 예다. 일자리를 빼가는 미국에 찾아가 읍소를 하든, 거세게 항의를 하든, 파격적으로 기업 유치전략을 세우든, 노동개혁을 하든 뭐든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자리와 투자를 지키겠다는, 그 절박함이 안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산업IT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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