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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 정재일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기생충'·'오징어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
클래식 레이블 데카서 앨범 '리슨' 발매

음악감독 정재일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정재일 음악감독 '리슨' 발매 기자회견(유니버설뮤직)

음악감독 정재일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정재일 음악감독 '리슨' 발매 기자회견(유니버설뮤직)

[파이낸셜뉴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정재일(41) 음악감독이 유니버설뮤직 산하 클래식 전문 레이블 데카에서 앨범 ‘리슨’을 24일 발매했다. 데카는 게오르그 솔티, 루치아노 파바로티, 정경화 등 클래식 명반과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 다양한 영화, 방송 등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발매했다.

정재일은 이날 오전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무대 뒤에서 예술가들을 백업하다가 이렇게 저 혼자서 기자회견을 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2003년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며 ‘눈물 꽃’을 발매했다가 아직 역량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꿈을 접었다. 지난 20여년간 다른 예술가들을 보필하는 역할을 해오다가 작년에 데카에서 당신 만의 것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2003년이 떠올라 망설였으나 다행히 팝송을 만들라는 요구는 없어서 마음을 바꿨다. 클래식 전문 레이블이라서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것을 바탕으로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전했다”
천재 음악 소년, 10대부터 프로로 활약

정재일은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연주가이자 작곡가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던 그는 만 3살부터 피아노를 치며 각종 악기를 섭렵했고, 1995년 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재즈아카데미 1기생으로 들어가 작곡과 편곡 등을 배웠다.

가계 경제를 도와야했던 그는 우연히 버클리 유학파 기타리스트 한상원의 제안으로 한상원 밴드 베이시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푸리’의 리더이자 작곡가인 원일을 만나 영화 음악도 작업했는데 1997년 ‘나쁜 영화’ OST 세션으로 참가했고 이듬해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OST의 건반과 기타 세션을 맡았다.

같은 해 발매된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2집 앨범 ‘후일담’의 키보드 및 베이스 세션으로도 참가했다. 1999년 17살 나이에 밴드 긱스 베이시스트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패닉, 박효신, 아이유 등 유명 가수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는 가요뿐 아니라 재즈, 국악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했고 연극, 뮤지컬, 창극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비롯해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지난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삽입곡 ‘소주한잔(A Glass of Soju)'은 아카데미 주제가상 부문의 ‘예비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엔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 ‘기생충’ 덕분에 엄청난 기회 생겼으나...”

정재일은 “영화 ‘기생충’ 때문에 제게 많은 일이 벌어졌다”며 “데카와 계약하여 이렇게 음반이 나온 것도 그중 하나다. 근데 제가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직접적인 변화를 못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통해 영화음악이 무엇인지?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더 생각하게 됐고, 영화음악을 더 사랑하게 된 게 변화라면 변화”라고 부연했다.

생계를 위해 10대부터 형들 사이에서 음악을 하며 ‘천재소년’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에게 결국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음악. 정재일에게 음악은 무엇일까?

그는 “뮤지션을 꿈꾼 적은 없다”며 “그저 중학생이 경제생활을 하기가 힘든데 어떤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잡고 싶은 절실함이 (당시) 있었다”며 음악을 하게 된 계기를 떠올렸다.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지금도 예술이라는 게, 수많은 노동 중의 하나라고 본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결여된 근면함이나 책임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악감독 정재일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출처=연합뉴스)

음악감독 정재일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서울=뉴시스] 2023.02.22. (사진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음악감독 정재일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서울=뉴시스]정재일 2021.11.18(사진=HMMA 제공 )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그는 이번 앨범 발매를 계기로 이렇게 대중 앞에 서는 일이 늘어날지를 묻자 “일단 생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무대 뒤에 있을 것"이라며 "거기서 얻는 예술적 희열, 삶의 도움이 있다. 동시에 지난 20년간 못해본 여러 새로운 일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덕된 기분, 1020대 시네마테크서 살았다”

그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덕분에 성덕이 된 것은 기쁘다고 했다. “정재일은 몰라도 ‘오징어 게임’ 음악은 전 세계인이 다 알게 됐다. 명예를 얻었다. 기본적인 제 삶은 변화가 없지만, 성덕은 될수 있었다”고 즐거워했다.

“제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빅팬이다. 영화 ‘브로커’를 작업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게 굉장한 일이 생겼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자는 ‘긱스 음반 발매 당시 10대이던 정재일을 인터뷰했는데 그때 어떤 음악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슬픈 음악과 영화 음악‘이라고 답한 기억이 있다’고 하자 정재일은 “기억 난다”고 답했다.

“어릴 적에 어두운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1020대 시절 어두운 음악에서 슬픈 음악, 슬픔에 웃음이 있는 음악에 점차 끌려 들었다. 동시에 시네마테크에서 살다시피 했다. 온갖 이상한 영화를 다보고 온갖 이상한 음악을 다 찾아들었다. 그때 학습하고 느낀 것을 밑천 삼아 아직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음악은 대중음악을 넘어 바흐, 브람스, 아르보 패트르와 같은 클래식 작곡가의 영향까지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제 기억 속 처음 좋아한 클래식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레퀴엠 스코어를 보면서 많이 공부했다. 또 라벨, 드뷔시, 아르보 페르트와 같은 현대음악가를 알게 됐다.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를 위한 애가’는 듣고 충격에 빠졌다. 루치아노 베리오, 진은숙 등의 현대 음악가에게 영향을 받았다.”

앞서 서울시향의 차기 음악감독 야프 판즈베던은 정재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정재일은 “위촉곡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그런 거장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아셨을까? 굉장히 황송한 제안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대학서 음악을 배운 게 아니라서 근본이 없다. 그들의 예술적 경지를 맞출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동시에 근본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 해보라고 하면 하고 싶은 작은 소망은 있다”며 위촉곡 제안을 수락할 용의가 있음을 내비쳤다.

음악감독 정재일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정재일(ⓒYoung Chul Kim 제공) /사진=뉴스1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