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안 들어오던 깡촌 시골, 지역 국회의원이 마을을 환하게 밝히던 날 생생히 기억
-강남 ‘부자동네’, "오히려 약자와 서민이 역차별 당하거나 방치, 소외돼"
-대통령, 현장에서 얘기듣고 바로 부처별로 검토 지시. 획기적이고 지방 중시하는 발언에 감동
-‘현장속으로, 시민곁으로’, 시민대표기관으로서 늘 주민 눈높이서 운영
[파이낸셜뉴스] 흔히 갈등과 대립이 일상인 한국정치의 폐단을 일갈할 때 동원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란 고사성어가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상대방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다가도 갈등을 풀어낼 묘수가 있다는 말이다. 무릇 정치의 기본은 민생이다. 한꺼풀 더 들어가면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일일게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집무실에서 만난 김현기 의장은 '정치의 본령'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단 일초도 망설임없이 '약자와 서민', '돌봄과 섬김'이라고 답했다. 한낱 정치인의 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정치 입문 전 이력을 들으면서 역지사지란 단어가 떠올랐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5학년 때, 경북 영주 깡촌 소년의 집은 전기가 안 들어왔다. 어머니가 행상으로 생계를 책임질 만큼 어려워 전기선을 끌어다 쓸 돈이 없었다. "왜 우리집은 전기가 안들어올까?". 소년은 저녁만 되면 호롱불 앞에 앉아 불이 환하게 켜진 다른 집들을 쳐다보며 늘 부러워했다. 그러던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마을 전체가 환해졌다. 어른들 말로는 지역 국회의원이 힘을 썼다고 했다. "아, 정치인이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에 그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정치인'이라고 적었다. 김 의장은 "절 정치로 이끈 건 '약자와 서민'"이라며 "세상과 사회를 바꾸는 무언가가 바로 정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25일 서울 중구 시의회 집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정치가 사회를 바꾼다' 호기로운 결단
그의 정치를 향한 갈증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더 커졌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서울 공립고 진학을 포기하고, 장학금을 주는 국립 철도고 졸업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부 산하기관에 취직했지만 늘 가슴 한 켠이 허했다.
첫 직장이 보수나 대우면에서 안정적이긴 했지만, 너무 뻔한 미래라는 생각에 좀 더 진취적인 일이 없을까 고민끝에 사표를 내고 1988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총재인 통일민주당 정책전문위원 공모에 응했다. 그에겐 첫 정치권 입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일반 직장생활을 하다가 얼마가지 않아 '정치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라는 어린 깡촌 소년의 호기로움이 다시 그를 정치권으로 소환했다.
두 번의 국회의원 공천탈락이란 뼈아픈 경험 끝에 드디어 2006년 서울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된다. 김 의장은 "정치 입문전 직장인으로 생활전선을 직접 경험한 건 '신의 한수'"라며 "정치의 본령인 '약자 돌봄' '서민 섬김'의 초심을 지탱해주는 최대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강남 지역구
김 의장은 서울의 대표적 부자동네인 강남이 지역구(개포, 일원, 수서, 세곡)지만 그에게 강남은 빈부격차로 대변되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는 "부자동네라는 공고한 편견의 틀 안에서 약자와 서민이 역차별 당하거나 방치, 소외되기 쉬운 곳이 제 지역구"라고 말했다. 실제 1만가구가 넘는 국민기초생활수급가구에다 강서, 노원 다음으로 서울에서 영구임대주택(약 2만가구)이 가장 많은 곳이다. 대표적인 판잣촌인 구룡마을도 있다. 구룡마을은 사회적 양극화라는 시대의 아픈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김 의장은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이란의 빈민운동가 시린 에바디는 방한때마다 가장 먼저 구룡마을을 방문한다"며 "12년째 갈등의 매듭을 풀지 못했지만 기존 제도와 관행, 법규정에만 얽매여선 해결할 수 없다"며 앞으로 현실을 감안한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약자와 서민을 위한 의정활동의 성과내기는 철저하게 현장의 디테일에 기반한다.
구체적으로 만성정체 구간인 밤고개로 확장을 비롯해 탄천하수처리장 복개, 5개 생태육교 건설로 대모산과 구룡산 능선 회복, 복도식 임대아파트 방한창문 설치, 초등학교 공기정화기 설치 등 주민에게 절실한 현장 민원 해결에 주안점을 뒀다. 반면 주민 눈높이에선 혈세낭비로 보이는 공무원 보은성 해외연수나 과도한 해외마케팅 예산 등은 과감히 삭감해 세금을 내는 서민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25일 서울 중구 시의회 집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지방자치제도의 안착을 위한 정책적 제언을 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지방자치 도입 30년, 아직 갈 길 멀다
김 의장은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30년이상 지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독립의 핵심인 '인사권'과 '조직권', '예산권'에서 아직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예속된 면이 많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아직도 중앙의 권한이 7대3 정도로 많은데 이게 5대5는 돼야 지방자치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사권의 경우 "의회와 지자체간 인적 교류의 길이 상당부분 막혀있고, 올 1월부터 조직개편을 했는데 지자체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났다.
그러면서 "예산편성권도 자율적으로 못한다. 서울시 예산을 시의회가 심의, 확정하는데 정작 의회예산은 시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비독립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가 국회법에 따라 모든 규정을 규율하는 데 반해 정작 전국 지방의회 운영 규정을 담은 통일된 '지방의회기본법'이 없다는 걸 문제삼았다. 그는 "말로만 지방자치를 외치지 말고, 지방의회에는 지방의회기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거기에 각종 제도를 넣으면 명실공히 지방자치의 완성도가 높아지게 된다"고 제언했다.
또 논란이 됐던 '교통방송(tbs) 지원조례 폐지안' 처리 주도가 결국 보수층을 의식한 게 아니었는 지'라는 질문에는 '원칙주의자로서 소신 의정의 산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의장은 "체질상 계산기를 두드리는 정치는 하지 않는다"라며 "자율주행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교통방송은 시대착오적으로 관행적으로 연간 수백억원씩 투입해왔지만 목적이 불분명한 예산은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 혈세로 운영되는 서울시 예산의 경우 ▲용도가 불요불급한 정책예산 ▲목적이 불분명한 예산 ▲정책효과가 불투명한 예산을 반드시 예산심의과정에서 걸러내야 하는 대표적인 3불(不)예산으로 꼽았다.
무임승차 논란, 중앙정부가 대안 내놔야
그는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만 65세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상향' 논란과 관련해서도 당초 해당 제도를 만들고 시행한 중앙정부가 결자해지차원에서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의장은 지난 2021년 기준, 서울지하철 운영적자가 약 1조원 안팎 발생한 것을 예로 들면서 "민간기업이면 벌써 도산했다. 서울지하철 운영 주체가 서울시이긴 하나 이용자는 서울시민 뿐 아니라 인천, 경기, 충청권에서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사실상 전 국민이 이용한다"며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중앙정부 지원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국영 철도를 운영하는 철도공사의 65세 이상 무임승차는 약 60% 정도를 정부가 보조한다면서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다만 무임승차 연령대 상향 조정여부에 대해선 "이 문제는 포퓰리즘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며 "점진적으로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주 면밀하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의장이 25일 서울 중구 시의회 집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주요 현안 중 하나인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대 상향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집권 2년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적 연착륙을 위한 방안에 대해선, "우선 너무 어려운 여건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어느것 하나 순탄한 게 없다"며 "(전임 정부로부터)빈 곳간 물려받았고, 외교안보면에선 최악의 상황"이라고 일갈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이 최근 개최된 중앙·지방 협의회의에 모든 국무위원 참석을 지시한 것을 예로 들고 "대통령이 현장에서 얘기듣고 바로 부처별로 검토하게 하라고 지시했는데 인구감소 등으로 지방소멸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와중에 획기적이고 지방을 중시하는 발언으로 감동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수행 평가를 묻는 질문에 "시정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잘 파악하고 있고, 서울시가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잘 설정하고 있다. 소통도 수시로 하고 있다"고 한 뒤 "앞으로 정치적 확장성을 더해간다면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며 덕담을 건넸다.
오 시장과는 수시로 현안이 있을때마다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고 밥도 가끔 먹는다면서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의 입장에서 의회를 운영할 것"
이와함께 최근 은행권이 사상 최대의 이자수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 데 대해선 "서민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코로나 등으로 어려울 때 대출을 많이 받고 고금리로 인해 이자부담이 커져 결국 은행권이 폭리를 취한 면이 없지 않다"며 "은행도 민간기업이긴 하나 공적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야한다"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의장은 마무리 발언에서도 "마음은 초심, 섬김은 무한"이라는 말로 정치인의 숙명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는 "의회는 시민의 대표기관이다. 늘 시민의 입장에서 의회를 운영하려한다. 11대 의회 슬로건이 '현장속으로, 시민곁으로'인데 제가 10년도 넘게 써오던 용어"라며 "이 용어만큼 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더 적절하게 표현한 건 없는거 같다"고 말했다.
특히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란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김 의장은 "늘 시민과 주민 편에 서서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도 함께하겠다는 초심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같은 배에서 싸우면 서로 자멸하기 마련"이라며 "항상 시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현장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그 의견이 시정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이를 제도화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25일 서울 중구 시의회 집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윤석열 정부 집권2년차에 대한 소회와 지방자치 발전 방안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김현기 의장 주요 약력 ▲경북 영주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행정학박사) ▲서울시의회 7·8·9·11대 의원(4선) ▲포럼 강남민생함께 대표(현) ▲제11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장(현) ▲제18대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회장(현)
정리=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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