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생뚱맞게 비례대표 의원 확대를 주장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들의 진흙탕 싸움을 벌써 잊었을까. 자신은 5선을 하는 동안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정치생활을 했다고 자부하는 모양이다. 김 의장의 제안을 들은 홍준표 대구시장은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전에도 "비례대표가 무슨 선출직입니까? 당에 의한 임명직이지"라고 일갈했던 홍준표다. 정치학원론을 따르자면 비례대표제는 사표(死票)를 줄이고 다양한 국민 여론을 반영한다. 말이야 맞다. 그러나 실상이 어디 그런가. 국회의원을 늘리겠다고 하면 경기를 일으킬 국민도 많다. 이를 잘 아는 김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역구 의원을 줄여서 비례대표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의원들이 반대할 것이니 어렵다." 국민은 원하는데 의원들이 싫어해서 못하겠다는 게다. 시쳇말로 '말이야 방귀야'다. 의장이 의원 편을 드니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비례대표가 되려면 몇 번은 O억, 몇 번은 OO억'. 정치 관련 수사를 했던 은퇴한 검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지금도 비례대표직이 돈을 주고받는 거래대상이라는 말이다. 계파 보스들이 밀실에서 후보 공천을 나눠먹고 공천헌금 순서대로 '매관매직'을 했던 일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중에는 '대통령의 뜻'도 있었다.
그런 비례대표들이 일은 제대로 할까. 네버(Never)! 보스의 전위대로 나서 눈치코치를 보는 것은 당연지사. 유신시대의 '거수기' 유정회의 후예라고 하면 너무 모독일까. 그러다 보니 비례대표를 '0.5선' '하위호환(下位互換)'으로 낮춰 보는 게 현재의 정치풍토다. 현역 의원도 아닌 최고위원이 비례대표 의원에게 "지역구 의원인 양 행동하는 것도 꼴불견"이라고 하대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정치개혁이랍시고 비례대표를 늘릴 궁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뛰어난 직능 대표 영입을 '정치 똘마니' 자리 챙겨주기로 전락시킨 게 우리의 구태정치 아니던가. 비례대표를 3폐의 하나로 꼽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당제와 다양성을 내세우지만 정치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파당과 분쟁만 늘어난다.
정치인생의 마지막에 와 있는 김 의장이 할 일은? "의원 수를 줄이자, 특권을 내려놓자"라는 돌직구를 날려보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정치원로의 반개혁적 제안은 국민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한 헛정치를 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의 열망은 의원들의 진정성이다. 선거 때만 허리를 꺾으며 읍소하고, 당선 후엔 안하무인으로 돌변하는 의원들이야말로 정치혐오(politicophobia)를 키우는 주범이다. 미우나 고우나 정치가 없으면 나라가 돌아갈 수 없다. 국민이 정치에 등을 돌리면 정치는 더욱 타락한다.
대한민국 의원들의 권한과 보수는 과도하다. 권력 보전에 매달리는 원인이 된다. 정치 신뢰도는 바닥을 파고 내려가는 중이다.
세비를 반쯤 깎고 국민 앞에 무릎을 꿇어도 회복이 될동말동하다. 저질정치를 오래 목도한 노(老)정치인이라면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할 도리다. 비록 참회록은 못 쓸지언정. 의원 확대보다, '개콘' 코미디보다 더 웃긴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먼저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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