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18) 기능적 장수를 위한 독립적 삶
신체 ·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발전하는 과학기술도 주저없이 활용
늙음이 아닌 성장하는 노년을 꿈꿔보자
옛부터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면 노련(老鍊)하다고 했고, 훌륭한 리더십을 발현하면 노숙(老熟)하다고 칭송했다. 노형(老兄), 장로(長老), 노대가(老大家) 등은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존칭이었다. 그런데 청춘문화가 범람하고 기계문명에 의한 이기가 등장하며 속도와 효율이 강조되면서 노인의 위상이 노둔(老鈍), 노쇠(老衰), 노약(老弱)으로 격하되면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해가고 있다. 장수시대를 맞아 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노인을 바라보게 할 수는 없을까 고심해본다.
노화연구를 업으로 삼아온 나 자신도 생체의 기본단위인 세포와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다가 확대 발전해 인간의 노화에 대한 노화종적 관찰 연구를 오랫동안 추진해 왔으나, 이러한 과정에서 노화란 어쩔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는 운명론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어서 인간이 늙어 죽게 되어있다면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의 최종단계에 있는 백세인을 대상으로 한 노화연구를 통해 답을 구하고자 했다. 백살 정도 되신 분들은 죽기 직전의 상황으로 당연히 의기소침하고 신체생리기능도 형편없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방방곡곡을 다니며 찾아가 면담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백세인들이 인간에게 필요한 규범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을 지키고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칠정(七情)을 발산하며 당당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백세인 어느 누구 하나 삶을 포기하거나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 분이 없었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으로 가득 차있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깨닫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공부하고 자기개발에 열중하는 분, 기업을 직접 운영하는 분, 젊은이 못지않은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과 같은 백세인들을 만나며 백살이 넘어도 홀로 당당하게 살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인간의 고령화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백세인은 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피가 끓는 생명의 열기와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백살의 나이에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장수시대를 맞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나이듦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영어로 'aging'을 번역할 때 보통 노화 또는 늙음이라고 번역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나이듦(加齡)'이다. 나이듦을 다시 자람(成長)과 늙음(老化)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나이 들면 들수록 더 좋아지고 더 커지고 더 많아져 가면 자람이다. 반면 나이 들수록 더 나빠지고 더 작아지고 더 줄어들면 늙음이다. 자람의 시기에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미래를 위한 능동적 노력을 하고 있지만 늙음의 시기에는 선택을 포기하고 과거를 향하여 피동적으로 밀려 나고 있다. 그렇다면 몇 살까지 자람이고 몇 살부터 늙음이 되는가? 그 경계선이 30살인가 50살인가 70살인가? 사회적으로는 연령을 바탕으로 노인을 규정해 정년과 은퇴를 결정하는 시도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자람과 늙음의 차이는 연대적 연령이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 선택에 따라 이뤄짐이 분명하다. 내 자신의 의지에 의한 능동적인 선택을 통해서 책임지고 나가면 자람은 계속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나이듦을 늙음이 없는 무제한 자람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나이듦의 당당함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며 남에게 의존적이지 않는 독립적 삶을 영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상생활능력(ADL)과 도구적 생활능력(IADL)을 갖춰 자신의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지켜야 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해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자식세대들에 대해서도 의존하지 않고 포용하는 대범한 자세가 필요하다. 버트런드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언급한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이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연령의 한계를 벗어나 서로 당당하고 대등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내 스스로 선택해 책임지는 삶은 독립정신을 필요로 한다. 최근 구곡순담(구례·곡성·순창·담양) 지역 백세인 연구에서 전남대학교 이정화 교수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백세인의 경우 자기부양비율이 높을수록 삶의 질이 양호하다고 했다. 자식이나 지역사회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직접 지키고 책임질수록 행복함을 보여주었다. 나이 탓하지 말고 남 탓하지 말고, 하자 주자 배우자의 의지로 자신을 책임지는 독립적 삶을 추구해야 할 때이다.
생명현상의 생로병사 무엇 하나 문제없이 넘어가는 것이 있는가? 산다는 것은 문제투성이고 고통을 빚는 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생명을 거룩하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떠한 간난신고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숭고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백살이라는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과 비교해 손색없는 삶을 사는 모습은 생명의 엄숙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거룩한 생명을 거룩한 나이듦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멈칫거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스스로 당당하게 일어나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 나이든 사람의 노둔, 노쇠, 노약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때가 되었다. 과거의 단순 수명연장시대를 벗어나 이제 진정한 기능적 장수(Functional Longevity) 시대를 이뤄야 한다. 기능적 장수와 노인의 독립적 삶을 추구하는 운동은 불가분리(不可分離)한 동전의 앞뒤이다.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