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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美, 반도체 초과이익 내놓으라니 황당할 뿐이다

사실상 영업기밀도 요구
미국 내부서도 비판 쇄도

[fn사설] 美, 반도체 초과이익 내놓으라니 황당할 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1년 4월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AP뉴시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겠다며 내건 조건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반도체과학법 보조금 지급기준을 담은 지원공고를 발표했다. 여기서 공개된 초과이익 환수 등 보조금 지급기준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기업들도 보조금 신청이 과연 득이 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기업들은 미국 당국의 파격적인 지원과 혜택 약속을 믿고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자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동맹국 기업들의 신뢰를 이렇게 망가뜨려도 되는 것인지 바이든 정부가 겸허히 돌아볼 일이라고 본다.

보조금 신청기업이 당초 제출한 전망치보다 높은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이익을 올릴 경우 일부를 미국 정부가 환수하겠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지원한 자금의 최대 75%까지 되가져가겠다는 것인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조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죽했으면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설을 통해 "미국 반도체과학법이 법에도 없는 기준을 들이대며 기업에 좌파 정책을 강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겠나.

이뿐 아니다. 기업이 계속된 투자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공장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지도 심사하겠다고 한다. 미국의 첨단무기 개발에 도움이 되는 기업에 대한 우대 방침을 밝히면서 기업의 생산, 연구시설 공개 의무사항도 추가했다.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전략도 기업들은 제출해야 한다. 공장 근로자에게 노조가 제시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설치까지 요구했다. 투자 보따리를 싸 들고 가는 동맹 기업 입장에선 엄연히 선을 넘는 간섭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당국의 심사 과정에서 기업 영업비밀이 노출될 수 있는 여지도 크다. 반도체 경쟁 핵심은 결국 기술싸움이다. 시설 현황과 연구개발(R&D) 비용을 소상히 밝히라는 것은 기업 고유전략을 공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투자 현황, 수익성 지표 요구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기업들은 기술보안 차원에서 제조시설 등을 외부에 일절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보조금 지급대가로 각종 비용을 전가하면서 세부기밀까지 노리는 것은 강대국의 횡포로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보조금 규모는 527억달러(약 67조원)에 이른다. 미국은 독보적 설계기술을 넘어 반도체 제조 패권국을 넘본다.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새 판 짜기도 그 일환이다. 미국과 손을 잡지 않으면 제조강국 한국은 시장을 넓힐 수 없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170억달러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신규 공장을 짓고 있는 것이나 SK하이닉스가 패키징공장 투자를 추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정교해져야 한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투자제한 유예 연장,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피해를 본 한국 전기차 문제도 남아있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하나가 돼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