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징용된 노동자들에 대한 피해배상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발표하자 유족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들은 "대일(對日)외교의 실패"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유족들 "아무 돈이나 받으라는 말이냐"
이날 발표의 골자는 '제3자 변제'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국내 기업 16곳으로부터 기부금을 지원받아 피해자들에게 대신 배상하는 것이다. 즉 지난 2018년 대법원 재판 당시 피고 측이었던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은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피해 유가족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외교적 성과에 급급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 아닌 '기부금'을 받으라는 부당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잘못한 자가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피해자들의 요구는 '돌아가시기 전에 아무 돈이나 받으시라'는 모욕적인 답변으로 돌아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시민들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일본 정부의 추가적인 사과는 고사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할 배상금을 한국 기업이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 정권부터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날 발표된 정부안이 계획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도처에서 만난 대부분의 시민은 '제3자 변제' 방식을 골자로 한 정부안에 대해 '대일외교 실패'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배상을 위한 재원이 한국 기업에서 나온다는 것에 대한 반발에서다.
개인사업을 하는 유모씨(40)는 "재단을 통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형식적 절차도 문제가 많지만, 배상의 재원을 왜 한국 기업이 마련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외교 참사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일양국 신뢰 회복 중요
대학원생 강모씨(28)는 "군국주의 시절에 국가권력을 이용해 노동자를 징용한 주체가 일본 정부이기 때문에 피해배상을 하는 주체 역시 일본 정부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날 한국 정부의 발표는 일본의 입장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일 양국의 신뢰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이날 발표된 정부안이 보수·진보를 넘어서 계획대로 이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강씨는 "중국이 굴기하는 현 국제정세에서 신생독립국인 한국이 기댈 곳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안보체제다"라며 "과거사도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이득 될 것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할 때"라고 지적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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