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 몰린 크레디트스위스, 중앙은행에서 약 70조원 빌려
유럽 금융 당국, 크레디트스위스 위기 확산 가능성 경계
15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미국 뉴욕의 크레디트스위스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로이터뉴스1
스위스 금융당국이 자국 내 2위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약 70조원의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 금융시장에서는 비록 CS가 한 고비를 넘겼지만 이달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 이어 CS까지 휘청거리면서 국제적인 위기 확산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CS는 1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에서 단기 자금을 빌리겠다고 밝혔다. CS는 최대 500억스위스프랑(약 70조5570억원)을 대출받아 유동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최대 30억 스위스프랑(약 4조2320억원) 규모의 선순위 채무증권을 발행해 현금을 조달하겠다고 설명했다.
CS의 울리히 쾨르너 최고경영자(CEO)는 “전략적 전환을 이어가기 위해 회사 강화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1856년 설립된 CS는 주요 20개국(G20) 산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선정하는 ‘글로벌 시스템에 중요한 은행(G-SIB)’에 포함되는 대형 은행이다. CS는 2021년 영국 그린실 캐피털과 미국 아케고스 캐피털이 연달아 파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에서 돈 세탁 등 금융 범죄 연루 혐의로 약 3300억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냈으며 2022년 순손실만 72억9000만스위스프랑(약 10조2766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고객들의 예탁 자산이 급격히 이탈했고 지난해 4·4분기에만 1100억스위스프랑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CS는 사우디국립은행에서 15억스위스프랑을 비롯해 총 40억스위스프랑의 투자를 유치해 겨우 위기를 넘겼다. 동시에 투자은행 사업부를 축소하고 2025년까지 9000명의 인력을 감축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미국에서는 SVB가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여파로 대량예금인출(뱅크런)을 겪은 뒤 파산했고 이로 인해 은행 재정에 대한 불안 심리가 세계적인 규모로 퍼졌다. 이 가운데 CS는 지난 14일 2022년 연례 회계 보고서에서 내부적으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으며 예금 이탈을 아직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 15일 사우디국립은행의 아마르 알 쿠다이리 회장은 외신 인터뷰에서 CS에 추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CS 주가는 같은날 스위스 증시에서 장중 30.8% 폭락했다가 반등해 24.24%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외신들은 CS가 이번 조치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 대형 은행들 가운데 처음으로 당국의 유동성 지원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CS에서 빠져나간 예금은 경쟁 은행인 스위스 UBS와 독일 도이체방크로 이동중으로 알려졌다.
유럽 은행들은 이번 사태가 다른 유럽 은행으로 번지지 않게 노력중이다. 관계자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이 각 은행들의 CS 관련 자금 규모와 위험 노출액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미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은 CS와 파생상품 관련 거래를 중단하는 등 위기 확산 방지에 나섰다.
영국 컨설팅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앤드류 커닝햄 유럽경제 이코노미스트는 "CS는 (SVB보다) 훨씬 더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고, 스위스 이외에 미국 등에도 다수의 자회사가 있다"면서 "스위스만이 아닌 세계적 문제"라고 평가했다.
한편 미국의 금리 동결 가능성은 16일 스위스 당국의 개입으로 한풀 꺾였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4.5~4.75% 구간이며 연준은 22일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
WSJ는 15일 보도에서 SVB와 미국 시그니처은행 파산에 이어 CS까지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며 연준이 기존 예상대로 0.5%p 금리 인상을 강행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제공하는 시장분석도구인 페드워치로 미 기준금리 선물 거래인들의 매매형태를 분석한 결과 22일 결정에서 동결을 예상하는 비율은 15일 50%에 가까웠으나 16일에 35%로 내려갔다. 0.25%p 인상을 예측한 비율은 65%였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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