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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사태 일단락, UBS 웃고 채권자, 정부, 직원 모두 '울상'

스위스 1위 UBS 은행, 2위 CS 약 4조원에 인수
인수 과정에서 특혜, 당국은 금융 혼란 막기 위해 '불가피' 주장
CS 후순위채권 22조원 휴지조각으로...채권자 책임 논란
사실상 '구제금융'...스위스 금융 명성에 오점

CS 사태 일단락, UBS 웃고 채권자, 정부, 직원 모두 '울상'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CS)회장(왼쪽 첫번째)이 UBS의 콜름 켈러허 회장과 악수를 나누는 가운데 알랭 베르세 스위스 연방 대통령(왼쪽 세번째)과 카린 켈러 서터 스위스 재무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도화선으로 불렸던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가 합병으로 일단락 되면서 이번 사태의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시장에서는 헐값에 CS를 사들인 스위스연방은행(UBS) 은행이 가장 큰 이익을 봤지만 동시에 CS 채권자, 스위스 금융 당국 모두 손해를 봤다고 평가했다.

■UBS, 당국 특혜 받으며 경쟁자 인수
프랑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19일(현지시간) UBS가 CS를 30억스위스프랑(약 4조23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는 총 자산이 1조1000억달러 수준이며 2위 은행인 CS의 총 자산은 5750억달러(약 753조원)로 알려졌다. CS의 시가총액은 지난 17일 종가 기준 74억스위스프랑(약 10조4857억원)이었고 UBS는 이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경쟁자를 흡수했다. UBS는 모든 CS 주주에게 22.48주당 UBS 1주를 주기로 했다. 앞으로 출범하는 통합 법인의 최고경영자(CEO)는 랄프 해머스 UBS CEO가 계속 맡을 예정이다. 양사의 최종 통합에는 3~4년이 걸릴 전망이다.

UBS는 이번 인수로 최대 50억스위스프랑(약 7조원)의 손실을 책임지는 대신 막대한 지원을 얻었다. SNB는 이번 인수 지원을 위해 UBS에 최대 1000억스위스프랑(약 141조원)을 대출해주기로 했다. 또한 UBS가 인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손실에 대비해 최대 90억스위스프랑의 손실 보증도 약속했다.

UBS는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CS 구조조정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얻었다.

UBS의 콜름 켈러허 회장은 이번 거래에 대해 "CS 주주들에겐 긴급한 구조이면서 UBS 주주들에겐 매력적인 거래"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에 남은 가치를 보존하면서 부정적인 노출을 제한하는 거래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이것은 스위스 재정 구조와 세계 금융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CS 채권자, 직원 모두 위태
이번 거래에서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세력은 CS의 후순위 채권인 '신종자본증권(AT1)'을 들고 있던 채권자들이다. 스위스금융감독청(FINMA)은 19일 UBS의 CS 인수와 관련해 CS의 채권 가운데 160억스위스프랑(약 22조4700억원) 규모 AT1을 모두 상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AT1은 은행에 문제가 생기면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우발전환사채다. AT1 채권 투자자는 은행의 자본 비율이 사전 임계치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을 잃거나 투자금이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 AT1은 일반 회사채보다 수익률이 높은 대신 채권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조치에 대해 주식회사의 정리 과정에서 주주보다 채권자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FINMA가 CS의 자본을 높이기 위해 AT1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며 세계 채권 시장에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일 홍콩 증시에서 HSBC와 스탠더드차타드은행의 주가는 각각 6%, 5% 급락하며 은행주 대부분이 약세를 보였다. 미 투자은행 나타시스의 게리 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T1 채권의 목적 자체가 극한의 시나리오에서 상각을 통해 완충효과를 내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가 AT1 채권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경고했다.

CS의 직원들도 위기에 처했다. CS는 이미 지난해부터 약 9000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번 인수로 인해 해고 규모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켈러허는 19일 성명에서 "앞으로 몇 달간 CS 직원들에겐 힘든 나날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UBS는 그동안 CS의 주요 손실 원인이었던 투자은행 사업부를 일부 정리할 예정이다.

■'금융강국' 자존심 구긴 스위스
스위스 금융당국은 20일 증시 개장 전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무리수를 뒀다. 거래를 서두르면서 인수합병에 반드시 필요한 주주 승인 절차도 생략했다.

당국이 급하다는 점을 눈치 챈 UBS는 협상 초반에 CS를 10억달러(약 1조3120억원)에 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당국은 겨우 인수가를 높이기는 했지만 막대한 혜택을 제공해야 했다.

카린 켈러 서터 스위스 재무 장관은 "CS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다"면서 세계 9위 투자은행인 CS가 채무불이행에 빠지면 국제 금융 시스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거래가 세금으로 기업을 돕는 '구제금융'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상업적 해결책"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BBC는 이번 사태로 안전한 투자처라는 스위스의 명성에 금이 갔다고 진단했다. 방송은 167년 역사의 은행이 불과 며칠 사이에 사라졌다며 스위스 정부와 금융 당국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다국적 금융사 알리안츠의 엘 에리언 수석 경제고문은 19일 인터뷰에서 "UBS가 경쟁사 CS를 급히 인수한 것은 최선은 아니지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UBS가 아니었다면 크레디트 스위스가 단계적 축소 혹은 국유화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제금융이라는 단어가 너무 끔찍한 표현이 돼서 많은 사람들이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길 피하고 있는데 이번 인수는 분명한 구제금융"이라고 주장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