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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히 들여다보이는 비닐하우스 농장, 그들에겐 일터이자 집 [외국인 노동자의 삶 (2)]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 비참한 노동현실 호소
'빌라·원룸 숙소 제공' 서류만 제출
실제론 불법시설물 내주는 경우 허다
재입국 취업은 고용주 서명이 필수
철저한 주종관계 만들어지는 원인
사후 관리감독 전무한 고용허가제
법 개정 않고선 비극 끊을 수 없을 것

훤히 들여다보이는 비닐하우스 농장, 그들에겐 일터이자 집 [외국인 노동자의 삶 (2)]
이주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경기 포천의 농장지대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옆동에는 노동자들의 빨래가 널려 있다. 사진=노진균 기자
훤히 들여다보이는 비닐하우스 농장, 그들에겐 일터이자 집 [외국인 노동자의 삶 (2)]
지난 4일 농장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태국인 노동자 분추씨가 거주하던 숙소.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파이낸셜뉴스 포천=노진균 기자】 경기 포천 일원의 농장지대를 최근 방문하니 즐비하게 들어선 비닐하우스들 가운데 차양막이 둘러쳐진 곳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이 대한민국 정부의 '고용 허가'를 받아 E-9(비전문 취업)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들의 숙소다. 검은 반원형 비닐하우스 문을 열면 샌드위치 패널로 조립한 가건물 숙소와 출입구 주변에는 다 쓰러져가는 한 평 남짓한 화장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곳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보내지는 다양한 채소들을 1년 내내 재배하고 있다. 외형만큼이나 이주노동자들의 채소농장의 노동은 가혹하다. 한 달에 2번뿐인 휴일을 제외하면 보통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한다. 보통 남자들은 농기계를 다루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약을 살포한다. 여성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쪼그려 앉아 채소를 따는데, 이들에게는 면 마스크 하나가 지급될 뿐이다.

현장을 동행한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68·사진)는 "정부가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신규 고용허가를 불허하는 등의 개선책을 내놨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 속헹씨가 영하 16도의 날씨에 경기 포천의 한 농장의 숙소용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들의 실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4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태국인 노동자 분추씨(67)가 거주하고 있던 숙소에서도 다시 한번 열악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추의 사망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김달성 목사는 숙소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분추가 90여마리의 어미를 비롯해 10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돈사들 중 가장 낡은 건물에 붙어 있는 샌드위치 패널 가건물 한 방에 거주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숙소에서 고작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 돼지 수십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며 "아무리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도 이런 곳에서 생활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을 발표해 일부 개선은 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주노동자의 70%가량은 움막 같은 불법 가건물에서 살고 있다"면서 "정부가 2021년 1월부터 컨테이너와 조립식 패널 등의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쓰지 못하도록 금지했으나, 녹슬고 낡은 가건물을 여전히 숙소로 제공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새 방침이 나온 뒤로 농업을 비롯한 제조 등 대다수의 사업장에 적용돼 사업주들이 원룸이나 빌라, 아파트를 얻어서 숙소를 제공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났다. 분명 눈에 띄는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편법이 만연해 있다고 김 목사는 지적했다. "빌라나 원룸을 제공한다고 서류를 내고 고용허가를 받은 다음 불법 시설물에 기거시키는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며 "기숙사를 아예 제공하지 않기도 한다. 이는 형식적으로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고용허가를 받으면 불법시설물에 기거시키는 것이 대부분인데, 고용지원센터의 부실한 심사, 사후 관리 감독이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달성 목사는 '고용허가제'를 개정하지 않는 한 이주노동자들의 이같은 비극을 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의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직장을 옮기거나 고용연장이 불허돼 고용주 지시를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며 "폭행과 폭언 등의 인권침해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사업주와 근로자를 대등한 관계로 재정립하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김 목사의 주장은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경험하고 목격한 데서 비롯됐다. 1979년 신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노동자 선교에 힘써 왔던 그는 10여년 전 포천에 정착하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지만 만남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에 그는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이 가는 병원을 찾아 1년간 꾸준히 발도장을 찍으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들과 친분을 쌓으며, 실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고작 10년 전이었음에도 당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1970~80년대 근로자들이 당했던 손가락 절단, 추락, 화상, 질식, 등의 원시적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었다"며 "더욱 충격이었던 것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산재보험이라는 것을 아예 몰랐다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산재보험 신청을 돕기 위해 나섰지만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이 만류했다. 사업주가 얼굴만 찡그려도 산재 신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며 "고용주와 이주노동자가 '갑을관계'를 넘어 철저한 '주종관계'에 놓여 있다"고 했다.

2018년부터 약 5년간 약 2000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김 목사는 국가가 만든 제도가 이들을 옥죄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들이 e-9 비전문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하는데 해당 비자로 한국에서 3년간 체류할 수 있다. 이후 1년10개월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최대 4년10개월 일을 할 수 있다.
다만 고용연장, 성실근로자로 재입국 취업을 위해서는 고용주의 '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10년 이상 성실하게 일한 미등록노동자들은 엄격히 선별해서 합법화시켜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끝으로 그는 "현장을 보며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은 이주노동자를 더 이상 착취의 대상인 '인력'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인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며 "이주노동자의 기본권, 인권, 노동권을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하게 인식해야 진정한 의식의 선진화를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njk6246@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