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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50만원 대출, 월이자 6416원의 의미

[강남시선] 50만원 대출, 월이자 6416원의 의미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자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험 갱신 기간이 도래했을 때, 보험사가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보험비용을 높여 가입을 시키는 게 맞을까요? 운전면허가 있는 한 다른 차들을 위해서라도 가입시켜야 합니다." 저축은행 고위 임원은 저축은행 대출 이자가 높다는 얘기가 나오자 대뜸 자동차보험을 예로 들었다.

"이자가 얼마건 1·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서 문제가 되는 경우를 봤습니까? 돈을 못 빌리면 그때부터 문제가 됩니다. 대부업,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갑니다. 거기서도 못 빌리면 문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고가 나게 됩니다."

'저축은행, 예금 금리 3%까지 내리면서 대출 금리는 여전히 19%대'라는 기사가 언론에 연이어 나온 뒤라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사실 숫자만 보면 자극적이지만 높아진 조달금리, 연체율 급등 등을 고려하면 저축은행의 이익률은 1% 남짓이다.

"사실 시중은행처럼 고신용자들에게 대출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연체할 이유가 없거든요.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대출해 주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져 볼 게 너무 많아요. 살인적 금리라고 욕하지만 이마저도 신청자 대비 대출 승인은 10% 정도밖에 안 됩니다."

때마침 정부가 오는 27일부터 최대 100만원의 '소액 생계비 대출'을 선보인다. 시중은행은 물론 2금융권에서도 대출받기 어려워 불법사금융에 내몰리는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해서다. 1차 대출한도를 50만원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금융당국은 "내구재 대출이 50만원 내외 소액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신용자들은 모를 것이다. 내구재 대출이 무엇인지.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란 뜻으로, 본인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서 단말기를 넘기고 그 대가로 현금을 수수하는 것을 뜻한다. 소위 휴대폰깡으로 불린다. 연 이자율이 3000%가 넘는 악덕업체도 많다.

정부가 나서서 소액 생계비 대출을 하는 것은 그만큼 제도권 대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2002년 연 66%에 시작한 금리는 현재 20%로 뚝 떨어졌다.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저신용자들이 활동할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정치권도 알고 있다. 하지만 12~15%로 더 낮춰야 한다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된 상태다. 고신용자에게 표를 받기 위해 저신용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셈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권 유동성 위기로 수천억원, 수조원의 손실을 봤다는 보도가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저소득 취약계층은 소액 생계비 대출 50만원을 받을 경우 월 이자는 6416원이라는 기사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사전예약 첫날인 22일 오전 상담 예약 신청자가 몰리면서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 접속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숫자놀음에 빠진 정치인들은 1차 대출한도 50만원의 의미를 과연 알까 의문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