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정학의 시대 (1)
경제안보 관련 특별대담 프리뷰
‘칩 워’ 저자 크리스 밀러 교수
"亞 군비 경쟁도 반도체와 연관"
1944년 7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국제통화체제인 브레튼우즈 시스템이 탄생했다. 미국 달러화 중심의 금환본위제인 브레튼우즈 1.0 체제다.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후에도 전 세계는 50년간 미국의 신용을 기반으로 한,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인 '브레튼우즈 2.0 시대'를 살았다. 미국은 세계 규범과 질서를 세웠고, 첨단기술의 표준을 만들었다. 중국은 이 안에서 G2의 지위까지 올랐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목도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금융 지정학(Financial Geopolitics)'을 주제로 오는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2023 FIND·서울국제금융포럼&서울국제A&D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세계 석학의 견해와 분석, 지정학 리스크를 반영한 우리나라 5대 금융지주의 인식과 전략을 4회에 걸쳐 '금융지정학 시리즈'로 싣는다.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길핀은 다른 국가들 위에 군림하는 국가를 헤게몬, 즉 패권국이라 불렀다. 근대에서 패권은 군사력만이 아니라 생산력과 기술 진보를 포함한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지닌다. 최근 100여 년간은 사실상 미국을 지칭했다.
미·중 무역 분쟁, 양국 반도체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표되는 현재 지정학 구도는 한 마디로 미·중 패권 싸움이다. 러-우 전쟁 1년이 지나고 중국은 러시아를, 일본은 우크라이나를 각각 방문하며 두 나라 간, 양쪽 진영 간 '분절'은 더욱 선명해졌다.
■반도체 잡아야 패권 잡는다
과거 미·소 간, 미·중 간 패권 전쟁이 이념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경제 안보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다.
반도체 기술의 역사와 미·중 반도체 전쟁을 담은 '칩 워(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는 22일 파이낸셜뉴스에 "반도체는 오늘날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며 "컴퓨터와 각종 기기, 이 기기들을 연결하는 통신 네트워크까지, 모든 영역에 반도체가 쓰인다"고 설명했다.
경제사학자인 그가 반도체를 핵심으로 거론하는 이유는 군비 때문이다. 밀러 교수는 "현재 아시아에서는 위험한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 20년간 중국은 군비 지출을 급속히 확대해 왔고, 일본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고 짚었다. 미국, 호주는 전쟁을 가정한 신규 방위 능력 확보에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반도체 전쟁의 승자가 국방과 경제 패권, 즉 경제 안보를 잡는다는 주장이다.
밀러 교수는 4월 19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2023 FIND·서울국제금융포럼&서울국제A&D컨퍼런스'에서 특별대담을 통해 참석자와 독자들에게 반도체 패권과 관련한 인사이트를 전달할 예정이다.
■지정학과 금융
국력이 강한 국가는 화폐의 힘도 강하다. 통화 패권국은 막대한 권력을 누린다. 국제통화체제의 규칙과 제도를 만들고, 국제통화를 발행한다. 국제통화는 국제무역에 수반되는 '결제 수단'이다. 결제는 '화폐'로 한다. 어떤 돈으로 어떻게 물건을 결제할지, 돈의 값은 서로 어떻게 설정할지 질서를 세운다. 이 과정에서 어느 나라가 더 많은 국제수지를 가져갈지가 결정된다.
국제통화에 대한 지배권은 세계 경제와 정치, 군사 분야의 패권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이다. 국제수지적자를 자국 화폐의 발행으로 메울 수 있어서다. 세금을 올리거나 구조조정 같은 고통스러운 국내 조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화폐 발행으로 생기는 인플레이션은 다른 국가로 수출된다.
■브레튼우즈 1.0과 2.0
미국은 통화 패권국이었고, 미 달러화는 오랫동안 기축통화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든 브레튼우즈 1.0 시대가 탄생한다. 기본은 금환본위제다. 미국만이 브레튼우즈 합의상 금 준비 보유액을 충족했기 때문에 회원국은 자국의 통화가치를 금이나 미 달러로 밝혀야 했다. 이때부터 미 달러는 국가 간 통화를 연결하는 기축통화,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에 사용하는 개입통화, 각국 정부 대외준비자산(외환보유고) 준비통화가 됐다. 달러 발행 남발로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국제수지적자와 달러 위기가 심각해졌고, 세계 각국이 변동환율제를 택하며 브레튼우즈 체제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달러는 석유를 통해 가치를 회복했다. 브레튼우즈 2.0 시대다. 석유 수출국들의 원유 가격 인상으로 오일쇼크가 발생했고, 미국은 산유국들이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 사용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금의 자리를 석유가 메꾼 것이다.
■브레튼우즈 3.0 올까
2022년, 세계는 러-우 전쟁이라는 초유의 '분절화' 사태를 목도한다. 이는 국제 금융질서 변화의 서막이다. 대러 경제제재로 달러의 쓰임새가 제한되면, 새 통화질서가 출현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 분절화로 인해 미 달러의 지배력이 반으로 약화하면, 신용 기반의 기존 통화질서가 무너지고 세계 금융은 파편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중국 위안화의 지위 변화가 주목된다.
러시아 쪽에 붙은 중국이 미 국채를 매각하거나 위안화를 찍어내 자체 양적완화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다. 중·러가 가스나 원자재 시장을 선점하면, 미국 등 상대 진영의 인플레이션 심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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