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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6·25 비정규군 공로자 인정, 176억원 지급…올해 10월 16일까지 신청 기한

국방부 "한 분이라도 더 찾으려 최선" 1년간 1792명 총 176억원 지급
"형님들과 죽을 고비 넘기며 유격전…이분들 희생 기억해달라"

[파이낸셜뉴스]
軍 6·25 비정규군 공로자 인정, 176억원 지급…올해 10월 16일까지 신청 기한
6·25를 맞아 국가기록원은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그날의 시선으로 본 기록' 전시회를 열고 6·25 당시 희귀사진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6·25전쟁 당시 비정규군으로 후방 유격활동과 첩보활동의 특수임무를 수행한 미군 산하 8240부대(주한첩보연락처, 일명 켈로부대)들이 인원 및 복장 점검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상관 없음) 사진= 국가기록원 제공
30일 국방부는 '6·25전쟁 전후 적 지역에서 활동한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 후 약 1년간 1792명을 6·25 비정규군 공로자로 인정하고 공로금 총 176억원 지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6·25 비정규군 보상법은 6·25전쟁 당시 국군이 아닌 신분으로 특정 부대·조직에 소속되어 적 지역에 침투해 첩보 수집 및 유격 활동 등 비정규전을 수행한 사람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공로금을 지급하고자 2021년 10월 시행됐다.

미국 극동군사령부 한국연락처였던 '켈로부대'(KLO), 미군 8240부대, 미 중앙정보국 첩보부대였던 '영도유격대', 미 극동공군사령부 첩보부대였던 '6004부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방부는 2021년 10월 '6·25 비정규군 보상지원단'을 설치해 지난해 2월부터 월 1회 위원회 심의를 진행했다. 심의에서는 그간 빛을 보지 못한 다양한 이들의 활동상이 확인됐다.

한 집안 5형제, 첩보원 부부, 어머니 뒤를 이어 유격 작전에 나선 아들 등 6·25전쟁 중 비정규군으로 활약했으나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영웅들의 행적이 공개됐다.

국방부는 이들을 포함해 현재까지 비정규군 공로자 중 형제 12건, 부부 24건, 부자 또는 모자 2건 등을 확인해 공로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비정규군 공로금 신청 기한은 올해 10월 16일까지다. 국방부는 대한요양협회·대한노인회·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과 협력해 대상자를 최대한 많이 찾아낼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임천영 보상심의위원장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헌신한 비정규군 공로자 한 분이라도 더 찾고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공로자 대부분이 85세 이상 고령임을 감안해 신속한 보상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軍 6·25 비정규군 공로자 인정, 176억원 지급…올해 10월 16일까지 신청 기한
6·25전쟁 당시 중공군 복장의 미군 제8240부대원.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상관 없음)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대표적한 사례로 집안 5형제가 모두 비정규군으로 활약한 경우도 발굴했다. 황해도 연백군 출신 이영일, 이영이, 이영걸, 이영우, 이영익이 주인공이다.

3남 이영걸 님은 8240부대 예하 '울프팩' 부대에 입대해 적 지역인 황해도 일대로 침투, 비정규전을 수행했다. 울프팩 부대는 강화도 교동도에 사령부를 두고 옹진반도 동쪽과 남쪽에서 한강 어귀와 인천 앞바다를 관할하던 부대였다.

2남 이영이 님은 울프팩1부대 대대장을 맡아 1951년 3∼12월 여러 차례 개성 인근 개풍군 일대에 침투해 개성 탈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뒀고 정전 후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장남 이영일 님은 작전관, 4남 이영우 님과 5남 이영익 님은 유격대원으로 활약했으며 현재 3남 이영걸과 막내가 생존해 있다.

이영걸 님은 "형님들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조국을 위해 수많은 유격전을 실시하고 고향을 수복하고자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먼저 고인이 되신 형님과 동생이 자랑스럽고 그립다"고 말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실제 주인공 첩보원 부부도 공로가 확인됐다.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인 '팔미도 탈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켈로부대원 이철 님과 최상렬 님은 임무 수행 중 만났다.

이철 님은 전쟁 초기 서울·인천 지역 첩보 수집을 위해 서울로 잠입해 최상렬의 집 지하실에 첩보 기지를 구축하고는 최상렬과 함께 인민군 또는 피난민 부부로 위장해 적군 사령부 동향과 배치 등 중요 첩보를 수집했다.

그는 영화에서 배우 정준호씨가 연기한 서진철이라는 인물의 모티브가 됐으며 팔미도 탈환작전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또 북진 작전 중에는 평양 일대에 첩보 기지를 구축하고 중공군 참전 등 핵심 정보를 보고한 탁월한 요원이었다.

이철과 최상렬 님은 1951년 11월 30일 서울시장 주례로 열린 켈로부대원 12쌍 합동결혼식을 통해 실제 부부가 되면서 남편과 아내의 인연을 맺었다.

첩보원 부부의 장남 이성훈 님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국가가 이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대를 이어 적진으로 침투한 사연도 공개됐다.

박정숙 님은 전쟁 전인 1949년 켈로부대 창설 초기부터 부대 소속 첩보원으로 활동했고 피난민·행상인으로 위장해 인민군 관련 첩보를 수집했다.

그는 전쟁 발발 5일 전 적 지역에서 소지하고 있던 첩보 보고서가 발각돼 포로가 됐고, 이후 전쟁 중 납북 또는 처형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현충원에 위패가 모셔진 상태다.

그의 아들 윤종상 님은 모친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이 터지자 홀로 피난을 갔다가 교동도에서 8240부대 예하 울프팩2부대에 입대해 황해도 연백군 봉화리 전투, 경원선 철로 파괴 등 다수 유격 작전을 수행했다.

윤종상 님의 아들 윤철 님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 소식을 들으셨으면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할머니와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고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