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정학의 시대 (3)
지정학 위기는 금융 불확실성↑
실물 자산에 대한 직간접 투자
자본흐름 왜곡으로 이어져
다양한 금융충격 파생시킬 것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금융지주 회장은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 변수로 기존 글로벌 경제·금융 질서가 바뀌고, 위험 또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지속되고 이에 따른 고강도 금리 인상, 공급망 차질까지 빚어지고 있다. 각자도생, 즉 글로벌 '분절화(fragmentation)'가 심화하고 있다.
이로 인한 지정학 위험이 경영 활동의 기본 변수가 될 것으로 회장들은 분석했다. 지정학적 갈등과 맞물려 이른바 '지경학적 분절화(Geo economic fragmentation)'가 향후 한국경제를 뒤흔들 것으로 우려했다.
더불어 국제 무역, 기술의 분절화는 이에 수반되는 무역금융과 지급결제, 해외 진출, 해외직접투자(FDI) 등 금융업에도 차질을 줄 것으로 회장들은 전망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탈달러' 경제블록에 금융 제재가 확산하면서 관련 금융, 투자 흐름도 왜곡될 수 있다고 이들은 분석했다.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지정학 분절은 금융 분절"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2023 FIND-서울국제금융포럼·서울국제A&D컨퍼런스'를 계기로 파이낸셜뉴스가 3일 진행한 5대 금융지주 회장 인터뷰에서 이들은 지정학 위기로 인한 세계 경제 분절화를 기본값으로 인식했다. 다만 금융이 위험 방어와 감수, 두 역할을 모두 가지고 있는 만큼, 지정학 변수 위험과 기회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올해는 예상되는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전략이라고도 했다.
특히 경제 블록화와 관련해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금융 분절화(financial fragmentation)' 개념을 제시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함 회장은 "경제나 무역, 기술 차원의 분열 조짐과 마찬가지로 금융 측면에서도 '분절화' 움직임이 시선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가 블록화되면 무역금융이나 지급결제 등 금융도 따라 블록화 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이미 달러화의 지배력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원자재나 에너지 교역과 관련해 대안적인 지급결제망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그간 달러화에 편중된 외화보유액의 다변화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처럼 금융 분절화는 자금조달이나 투자 운용, 혁신성장 지원 등 국제적 차원의 위험 감수를 저해하고 국제 금융시스템의 안전한 지급결제 보장 및 위기 예방 기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최근의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며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봤다. 진 회장은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디지털 전환 가속화, 고물가·고금리 등 글로벌 정치·경제·외교·사회·문화가 여러 방면에서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어 경제 불확실성 또한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 회장은 특히 러-우 전쟁 변수를 크게 봤다. 그는 "러-우 전쟁은 글로벌 핵심 지역 중 하나인 유럽에서, 패권을 놓고 다투는 서방과 비(非)서방 간 본격적인 대결"이라며 "각 진영이 그동안 자원 개발과 공급, 제품의 생산과 수출, 소비와 자금 공급의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러-우 전쟁 이후 이런 글로벌 밸류 체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두 진영은 각자 새로운 밸류 체인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오랜 기간 정착된 달러 결제 시스템과 글로벌 생산-소비 분업화, 각자의 분야 별 상대적 우위에 따른 경쟁력 차이 등을 고려하면 경제 불확실성과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실물경제 악영향·인플레 유발"
지정학 위기는 경제 블록화와 공급망 단절로 이어지고, 원자재 가격과 중간재 가격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높일 것으로 회장들은 예상했다.
고물가는 기준금리와 신용시장, 주식과 부동산 등 실물자산 가격에 반영된다. 또 자유무역주의가 후퇴하면 우리나라와 같은 교역 중심 국가의 잠재성장률은 낮아지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하방 위험 역시 커진다는 설명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위기 발생 압력이 높은 상태"라며 "코로나19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재정·통화·금융정책으로 장기간 부채 문제가 누적된 가운데 금리가 급등하면서 금융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따른 가계 소비 능력 감소, 정책 대응 여력 축소 등으로 실물경제의 빠른 회복도 보장하기 힘든 상황으로 그는 봤다.
북한 변수도 거론됐다.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은 "그동안 상수화됐던 북핵 위협이 최근 미·중 간 대립, 러-우 전쟁 등과 맞물려 동북아를 둘러싼 지정학 위험 요인으로 재차 부상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실물에 대한 직간접 투자는 자본흐름 왜곡으로 이어져 다양한 금융충격을 파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 속 기회 요인을 포착하기 위한 지주 움직임도 읽혔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는 지정학적 여건 변화가 글로벌 비즈니스에 기회·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예를 들면, 국내은행들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진출해 있는데, 미·중 갈등 구도에서 동남아 지역이 제조업 기반 확대 등 반사이익을 얻어 비즈니스 기회가 많을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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