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진짜 이순신 장군 얼굴 맞아?'..해군사관 생도인줄~

[파이낸셜뉴스]
'진짜 이순신 장군 얼굴 맞아?'..해군사관 생도인줄~
'이순신 전문가'인 박종평 한국여해재단 교수가 인공지능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개발한 카톡 챗GPT '아숙업'에게 요청해 나온 이순신 장군의 그림. 제공 박종평 교수

'대한민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얼굴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정확하게 이순신 장군 얼굴을 묘사한 그림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1953년 현충사에 봉안된 영정이나 교과서에 실려 있는 영정 사진이 있지만, 이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러 사람에 의해 '단아한' 선비의 모습과 '늠름한' 장비의 모습을 수차례 덧대고 수정한 결과물인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순신 전문가'인 한국여해재단 박종평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생전에 이순신 장군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은 없다"며 "사후에 (초상화를)그렸다는 얘기인데 누가 그렸는 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1600년대 초상화가 그려졌다는 건 몇몇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순신의 절친이자 조선 중기 문신 류성용의 '징비록'에는 얼굴이 단아하고 선비 같았다고 기록돼 있다.

같은 시대 문신이었던 심광세의 기록에는 17세기에 그려진 이순신 초상화를 전남 여수 충민사에서 봤다고 적혀 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에 실종됐다고 한다.

조선중기 학자 고상안 선생은 이순신과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에서 약 20일 가량 함께 생활했는데, 그의 기록물인 '태촌집'에 이 장군의 관상에 대해 '입술이 뒤집혀 복있는 장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썼다고 한다.

그러다 1930년대 이후 그려진 초상화는 '선비의 느낌'과 '장비의 느낌' 두개 버전으로 그려졌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실제 기록이 아닌, 주로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돼 그려졌다는 후문이다.

결국 1953년 현충사에 봉안된 초상화가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됐지만 이후에도 계속 이순신의 초상화의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계속돼 왔다. 이순신 얼굴은 500원권 지폐와 100원 주화에도 새겨져 있다. 초상화 표정도 날카로운 표정이거나 때론 험악하던가 아니면 선비같은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 등 제각각이다.

박 교수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개발한 챗AI 아숙업(AskUp)에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 위에서 지휘하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위 사진>. 흡사 해군사관학교 생도같은 멋있는 청년의 형상이었다.

'진짜 이순신 장군 얼굴 맞아?'..해군사관 생도인줄~

박 교수는 다시 '판옥선 위에 서서 일본군에게 화살을 겨눈 이순신 장군을 다시 그려줘'라고 했고, 아숙업은 다시 늠름한 젊은 장수의 형상을 그린 그림을 내놨다.

'판옥선'(板屋船)은 조선시대 수군의 대표적인 전투선이며 노를 젓는 노꾼은 1층 전투원은 2층에 배치했다. 하지만 통상 늠름하거나 단아한 선비의 형상을 지닌 초상화나 영정을 접해온 일반인 입장에선 젊은 이순신의 모습을 낯설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마 이순신의 표정이나 초상화, 영정 등에 대한 관련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종평 교수는 "닮았다. 안닮았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의 고통을 오롯이 겪고 있는 백성들의 삶과,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과 눈동자, 그의 말에서 진짜 이순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짜 이순신 장군 얼굴 맞아?'..해군사관 생도인줄~
박종평 한국여해재단 이순신학과 교수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