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능 도예가
26일까지 '불의 남자' 도예전
기존 유약에 의존하는 방식 탈피
흙 고유의 색과 질감 생생한 전달
새장르 '토흔' 개척 세계적 호평
지산 이종능 도예가가 그의 작품 '토흔 달항아리-고향의 언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노주섭 기자
오는 26일까지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불의 남자 이종능 도예전'이 열리는 부산 수정동 협성종합건업 빌딩 1층 전시실
"흙은 자애로운 어머니요, 사랑하는 님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설렘은 더해만 가고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있어 여기까지 떠내려 왔습니다. 흙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흙과 불과의 운명인가 봅니다. 불길이 있었기에 스러져가는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고 차가운 몸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을 태워버리고 아무도 간 적이 없는 길을 떠나도록 불을 밝혀주었습니다. 우여곡절의 세월 속에서 태어난 새 생명을 '토흔'이라 지었습니다. 흙이라는 사랑하는 님이 있었기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 이종능의 독창적 세계는 흙에 불의 형상을 담아내는 '토흔(Tohheun·土痕)'이다. 지난 6일부터 오는 26일까지 부산 동구 수정동 협성종합건업 빌딩 1층 전시실에서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불의 남자 이종능 도예전'이 열리고 있다. 지산 이종능 도예가가 이번 부산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2022년 11월 퇴촌 작업장에서 적은 글이다.
'토흔'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이종능 도예가는 유약에 의존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흙의 고유한 색과 느낌을 함축해 태초의 색을 그대로 전달하는 도예 기법으로 새 영역을 구축했다.
이번 도예전에는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백색의 달 항아리 연작과 세계 도자사에 유일무이한 토흔 달 항아리, 수년의 산고 끝에 회화 영역의 벽화인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 작품을 오마주한 도예작품과 그림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토흔'을 흙의 흔적, 세월의 느낌, 간절한 기도"라고 표현하면서 "나의 스승은 자애로운 어머니이고, 고도 경주와 대자연"이라고 말했다.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푸른 하늘을 베개 삼아 허공을 가르는 계림 숲의 이끼 낀 기와지붕의 선,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은은한 에밀레 종소리…내가 자연 박물관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유년시절을 보냈다"면서 "이것이 '흙과 불의 여행'의 시발점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왔다가 어드메로 가고 있는가. 산골에서 꿈틀거리는 미물들도 소리 없이 왔다가 언젠가는 기약할 수 없는 시간에 햇빛을 등지고 만다"면서 "부족함과 절실함이 만들어낸 따스한 행복이 예술"이라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마음을 지닌 이종능 도예가에 대해 작가(소설가) 최인호는 '지산에게는 거짓말하지 않는 단호함, 자신의 거짓을 용납지 않는 치열함, 거짓을 모르는 참빛이 있으니 반드시 육신을 태워 불가마 속에서 하나의 등신불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이 시대의 소중한 장인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토흔'은 산에서 갓 얻어낸 흙의 색과 질감을 유지하는 도예 기법이다.
그가 스스로를 '흙의 본질적인 원시성에서 색감, 질감, 선 그리고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의 작가'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종능 도예가의 작품세계는 런던의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적 미술관에서 한국 전통 도예의 정수를 전파하고 있다.
그는 "처음 흙에 마음이 뺏긴 건 1979년 대학시절 지리산 여행에서"라면서 "비가 많이 와 산이 무너졌는데 물기를 흠뻑 머금은 무지갯빛 흙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고 흙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게 됐다"고 도예 입문 당시의 감동 어린 심정을 들려주기도 했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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