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 주 포트미드에 위치한 국가안보국(NSA) 본부의 모습. 뉴시스
미국 정보당국의 한국 정부 고위 인사에 대한 도·감청 의혹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실은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오는 26일 방미를 앞두고 터진 도·감청 의혹 보도와 관련해 미 국방부와 법무부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매체는 총 100쪽에 이르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등의 보고서가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취합한 해당 정보는 '시긴트'(SIGINT·신호정보)로 수집됐다는 표현이 적시돼 감청의 산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유출 문건에는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이 미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한 대화가 들어있다.
미국 정보당국이 수집한 수많은 문건 중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정보뿐 아니라 중동과 중국 문제, 북한 핵 관련 진행상황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을 비롯해 영국, 이스라엘 등 다른 우방국에 대한 무차별 도·감청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한국의 경우 정보수집 장소가 미국이 아닌 국내로 예측된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미국의 동맹국 도·감청 사실이 적발돼 큰 논란을 부른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3년 국가안보국(NSA) 소속 에드워드 스노든의 동맹국 감시 사실 폭로로 홍역을 치렀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들을 상대로 더 이상 도·감청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2021년 5월 미국이 유럽 고위 정·관계 인사들을 도청한 사실이 덴마크 언론의 보도로 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을 빌미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졸속으로 추진돼 구멍이 뚫렸다고 야당이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이날 국방부는 대통령실과 나란히 위치한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에 대한 도·감청 대비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비록 도·감청이 집무실 이전과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국가안보실과 대통령 경호처 차원의 철저한 자체 보안점검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한미동맹 70주년과 12년 만의 국빈 방미의 의미가 퇴색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집안 단속은 스스로 잘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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