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한은 총재 미국 간담회서 '지라시' 가짜뉴스 대책 언급
미국을 방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뉴스1
디지털 뱅킹 시대를 맞아 전통적 금융제도의 전반적인 손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현지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드러난 초고속 뱅크런(예금 대량인출)과 관련, "(은행의) 담보 수준이 적절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 점도 이러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SVB는 36시간 만에 초고속 파산하면서 '디지털 뱅크런' 위기를 촉발했는데 한국의 잠재적 리스크는 훨씬 높다고 봐야 한다. 오죽하면 이 총재가 한국에서 SVB와 같은 은행 파산 사태가 재연될 경우 미국보다 예금인출 속도가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언급했겠는가.
뱅크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손봐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성된 감독 체제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큰 틀에서 재정립하는 게 시급하다. 대표적으로 중앙은행의 규제나 예금보호제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 특히 미국에서 현실로 다가온 뱅크런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지급보증을 위한 은행의 담보자산을 높이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 이와 관련, 이 총재도 "한국은행 결제망에 들어오는 기관은 지급보증을 위한 담보자산이 있는데 결제하는 양이 확 늘면 거기에 맞춰 담보도 늘려야 한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디지털 뱅킹 속도에 걸맞은 제도개선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금융불안을 촉발하는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 12일 웰컴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서 1조원대 결손이 발생했다며 이들 은행 계좌가 지급정지될 예정이라는 '지라시(불법 사설정보지)'가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가짜뉴스에 이끌려 금융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예금인출에 나서면 한국도 충격적인 디지털 뱅크런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디지털 뱅킹수요가 적던 시절엔 은행의 인출이 어려우면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시간을 두고 예금을 돌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뱅킹 시대에는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 내에 대량인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갑자기 인출요구가 빗발치면 제아무리 건전한 금융기관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디지털 환경은 외국에 비해 뛰어난 편이다. 그만큼 디지털 뱅크런 위험에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소문이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선제적 대응을 위해 은행의 담보자산을 늘리는 등 감독 체제를 바꾸려고 하면 금융기관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그러나 금융은 신뢰로 먹고사는 산업이다.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장치가 부실하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게 금융업이다. 가뜩이나 금융정책을 동원해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대응에 심혈을 쏟고 있는데 뱅크런 사고라도 터지면 어쩔 건가. 방심한 채 디지털 뱅크런 대응을 미루는 건 금물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