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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정·방해정이 불탔다… 갈길 먼 문화재 소방 인프라

작년부터 산불 늘며 피해 급증
대부분 목조에 산 속에 있어
불나면 순식간에 잿더미로
자동 소방설비 설치 늘려야

상영정·방해정이 불탔다… 갈길 먼 문화재 소방 인프라
지난 11일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로 도 유형문화재 50호 방해정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8시 22분께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강풍으로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인근 전신주를 덮쳤고, 전선이 끊기면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스파크는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주변 소나무 숲으로 번졌고 소나무 기름인 송진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축구장 면적 350배에 달하는 산림 379헥타르(ha)를 태웠다. 산불은 경포대 인근에 있는 문화재들로 옮겨붙었다. 이에 19세기 중엽 지역 유림에 의해 새워진 '상영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선후기 문신 이봉구가 벼슬길에 내려와 지내고자 지은 '방해정'은 불에 탔다.

최근 건조한 날씨 영향으로 산불이 자주 발생해 문화재 피해가 다시금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강원 양양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된 후 관련 소방 인력을 확충했다. 하지만 최근 산불이 늘어나면서 인력 확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계식 소방 장치나 특수약품 활용 등 체계적인 소방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불 피해 문화재, 올해만 3건

1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후 산불로 인한 국가지정문화재 피해는 총 5건이다. 지난 2021년 1건, 2022년 1건에 이어 올해는 이미 3건이 발생했다. 국가지정문화재와 함께 지자체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 등 비국가지정문화재로 시야를 확대하면 피해 규모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1일 강릉산불로 전소된 상영정은 미지정 문화재였고 일부 소실된 방해정은 강원도 지정 문화재였다.

이처럼 문화재 피해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산불과도 연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사찰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우리 목조문화재의 80% 이상은 산림 안에 자리하고 있어 산불에 취약하다. 실제 연간 낙산사가 전소된 지난 2005년에는 한해 516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후 연간 200~300여건 정도 수준으로 산불이 줄어들면서 문화재 피해도 함께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산불이 756건으로 급증하는 등 최근 산불 횟수가 늘면서 다시 문화재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11일 기준 443건의 산불이 발생해 넉달 만에 연간 수준의 산불이 발생했고 문화재 피해도 3건이 나온 상황이다.

■자동화 소방 설비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산불 급증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오르고 그만큼 대기가 건조해지고 있어 앞으로 산불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특히 문화재를 산불로부터 효과적으로 지키려면 자동 소방설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5년 낙산사 전소 사태 이후 문화재청은 산불 또는 문화재 자체의 화재 등에 대처하기 위해 소방시설, 방범시설, 전기·통신시설 등 재난 방재시설구축하는 '문화유산 재난안전관리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재안전경비원'이란 문화재 감시 인력을 배치해 24시간 상시로 산불 등 화재예방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에 의존한 소방 대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이 일어나면 열기 때문에 소방장비를 갖춘 사람도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 운용하는 소방 장치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수막 시설, 즉 문화재 주변 땅에 배관을 묻은 후 버튼만 누면 물줄기가 나오게끔 해 문화재를 보호하는 소방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며 "수막시설을 설치하고 그밖에 떡갈나무와 같이 잎에 물기를 머금은 활엽수림을 조성하거나 공지를 만들어 문화재와 숲 사이의 이격거리를 조성해 산불이 문화재로 옮겨붙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수 약품 사용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을 대신해서 인산암모늄 계열의 약품(이른바 '지연제') 등을 뿌려 산불이 번지는 것을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