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모 대기업에 다니는 4년차 직장인 정모씨(32)는 월급명세서만 보면 눈을 의심할 때가 많다. 올 들어 임금이 인상됐다곤 하지만 세후로 가져가는 월급봉투 두께는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민 중산층이 받은 국세감면액이 43조4000억원에 달한다는 뉴스는 딴 세상 이야기다. 올해도 국세감면액은 11.5% 늘었다고 하지만 정씨는 "월급 내역을 보면 세금을 이렇게 많이 떼어가나 싶다"고 말했다.
■중산층 세수부담 가시화
16일 국세통계 등에 따르면 근로소득세수는 지난 5년간 69%가 뛰었다. 지난해 결산 기준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해 57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1년 기준 과세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은 35.3%로 이미 704만명에 이르렀다. 늘어난 세수를 정씨 같은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이면서 소득이 전부 공개되는 '월급쟁이'들이 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국세수입은 11조4000억원으로 전년동월비 9조원 줄었다. 1, 2월 누계로는 5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5조7000억원 적다. 소득세에서만 30조4000억원에서 올해 24조4000억원으로 6조원 감소했다. 소비지표로 볼 수 있는 부가가치세도 함께 감소했다. 환급 증가와 세수이연에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해도 5조9000억원이 줄었다.
물가와 금리가 동시에 상승하며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은 급격히 감소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신모씨(31)는 "승진하기 전까지 월급은 그대로인데 이자가 오르면 평소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가계에 외부충격이 가해진 상태에서 정부가 가하는 '원천징수'는 고스란히 중산층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늘어난 부담만큼 소비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래도 믿을 건 중산층뿐
정부는 올 세수가 예산을 짤 때보다 덜 걷히는 세수결손 가능성이 높아지자 대안 마련을 검토 중이다. 우선 유류세율의 단계적 인하 중단이 유력하다. 2021년 11월 대비 37%까지 낮춘 유류세는 이달까지가 인하기한이다. 올해 세입예산을 유류세 인하 유지를 전제로 했음에도 세수부족이 가시화되자 5조원에 달하는 대안으로 꼽힌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 L당 2000원을 넘겼던 기름값 상승세가 재연된다면 유류세 단계적 인하 폐지는 가계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정부는 중·저소득자에 대한 사회적 약자 지원은 계속하고 있다. 일부 세목의 개인지방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1400만원 이하로 상향해 세금감면 대상을 늘렸다. 난방비 지원과 긴급생계비 대출에도 재정이 투입됐다.
다만 '먹고살 만한' 직장인에 대한 지원은 아직 미미하다.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일부 조정했지만 세율은 고정했다. 식비 비과세 한도 20만원, 소득공제 강화 등 일시적 소비진작에 그칠 뿐 실질적인 가계부담 완화는 부족했다.
한편 주택금융공사(HF)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주택구입물량지수는 3.0으로 나타났다. 중위소득 가구가 대출을 끼고라도 살 수 있는 아파트가 100채 중 3채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4인가구의 중위소득은 월 512만원, 중산층 기준인 50~150% 구간은 월 385만~1020만원이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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