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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미래 안 보이는 양곡관리법 정쟁

[구본영 칼럼] 미래 안 보이는 양곡관리법 정쟁
"밥은 먹었나?" 베이비붐 세대라면 어릴 적 흔히 들었던 안부 인사였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던 그 시절 우리네 밥상에서 쌀은 귀하디귀했다. 정부는 보리혼식과 분식장려 캠페인을 벌이고, 초중고에선 도시락 검사 같은 진풍경이 빚어졌다.

그 무렵 산업화 깃발을 든 박정희 정권은 쌀 소비 억제 노력과 함께 증산에도 힘을 쏟았다. 통일벼 도입 등 품종개량이 그 징표다. 그때 채택한 쌀값 안정 대책이 '이중 곡가제'였다. 농민에게 높은 값으로 사서 도시민에게 싸게 파는 정책이었다.

이중 곡가제는 그 당시로선 '신의 한 수'였다. 생산이 늘어나도 쌀값은 폭락하지 않도록 농민을 보호했다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저임금에 허덕이던 도시 근로자들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쌀을 공급함으로써 시대적 과제였던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철승·김영삼·김대중 등 야당 지도자들도 수매량이나 가격 등 각론에 이견을 보였을지언정 이중 곡가제의 취지 자체엔 공감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첫 거부권을 행사하고, 반발하는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삭발식을 가졌다. 지난주 민주당은 개정안 국회 본회의 재의결을 기도했으나,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이란 벽을 넘지는 못했다.

민주당의 양곡관리법은 안 팔리고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매입하는 게 골자다. 이미 예산으로 일정 비율의 초과물량을 매입해 창고에 보관하는 '시장 격리'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참에 종전의 최저입찰가가 아닌 시장가격으로 전량 매수하자는 것이다. 세계적 인플레 속에 농자재 값도 치솟아 야당의 주장은 얼핏 솔깃하게 들린다.

그러나 쌀 소비는 줄어드는 터에 생산 과잉은 국가적으로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밖에 없다. 양곡관리법이 시행될 경우 1조4000억원 예산 부담은 논외로 치자. 쌀보다 경제성이 큰 작물을 생산할 기회를 놓치면 결국 농가소득은 더 불안정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쌀 소비 감소 추세가 불가역적이란 사실이다. 여당이 양곡관리법의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을 입에 올렸다 각계의 실소만 자아내지 않았나. 매년 수십만t의 쌀을 '격리'한다고 치자. 몇 년 묵은 쌀을 이미 입맛이 고급화한 국민들이 찾을 리도 없다. 헐값의 동물사료용 등으로 넘겨지면 다행일 게다. 오죽하면 나랏빚으로 생색내는 데 도가 튼 문재인 정부조차 양곡관리법 처리를 주저했겠나.

그래서 이재명표 1호 민생법안이라는 양곡관리법은 시대착오적으로 비친다.
사법 리스크를 덮으려는 방탄용이란 해석은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무엇보다 개발연대의 이중 곡가제에서만큼도 나라의 미래에 대한 혜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쌀 소비 촉진이 아니라 다른 작물로 전환해 공급을 줄이는 게 시대적 요구라면? 이제 정치권이 농심을 겨냥한 근시안적 포퓰리즘 경쟁을 멈춰야 한다. 쌀농사를 줄여도 농민들이 안정된 수입을 얻도록 스마트팜 기술과 시설 지원 등 합리적 대안을 찾을 때다.

kby777@fnnews.com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