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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기업과 옛 신문광고]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6·25전쟁 직후에는 이렇다 할 기업이 없어 지면에 나오는 광고도 변변한 것이 없었다. 영화, 주류 광고가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 눈에 띄는 광고가 샘표간장이다. 중장년층이라면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이라는 샘표간장 광고 노래가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1961년에 나온 이 CM송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하숙생'의 작곡가 김호길이 곡과 가사를 지었고, 가수 김상희가 불렀다. 샘표간장 상표는 1954년 5월 특허출원한 가장 오래된 상표이기도 하다. 광고(사진·경향신문 1955년 7월 30일자) 속에서 왼손에 핸드백, 오른손에 간장을 들고 있는 사람은 당시의 유명 여배우 주증녀다. 이 광고는 자매품인 고추장 광고인데 '罐入(관입)'이라고 돼 있다. 캔에 넣은 고추장이라는 뜻이다.

한국인은 장(醬) 없이는 살 수 없다. 샘표간장은 1946년 서울 충무로에서 함남 함흥 출신인 창업주 박규회 회장이 설립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특히 피란민들은 장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만들어 파는 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직원들이 간장병을 들고 돌아다니며 맛을 보여주며 팔았다고 한다. 샘표간장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다. 1954년 선보인 소비자카드는 전화 한 통이면 집에서 간장을 받아 먹을 수 있는 제도였다.

1958년 샘표 충무로 공장 3층 옥상에 커다란 네온사인이 설치되어 밤을 환하게 밝혔다. 어두운 서울의 명물이 된 이 네온사인 덕분에 1년 새 매출이 몇 배나 올랐다고 한다. 1959년 창동에 공장을 건설하며 사세를 키워간 샘표는 미8군에도 간장을 납품하고 홍콩으로 수출길도 텄다. 빈 맥주병을 손으로 씻어 간장을 담아 팔던 1960년대 말, 박 회장이 병 씻는 기계를 들여놓고 병을 씻던 비정규직 아주머니들을 정직원으로 발령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0년 번거로운 유리용기에서 식품업계 최초로 페트용기로 바꾼 것도 샘표였다. 현재 간장을 제조하는 기업이 10여개에 이르는 가운데서도 샘표는 50%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창업주의 장남인 박승복을 거쳐 현재 샘표식품은 손자인 박진선이 이끌고 있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색적인 학력의 소유자다. 샘표식품은 지난해 매출액 3718억원을 기록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