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울산 남창옹기종기시장
광역전철 뚫려 제2 부흥기 맞은 울산 남창장
365일 갓 잡은 제철 해산물·산나물 가득
시장명물 국밥집선 어르신도 오픈런
과자점·국수·족발 등 각종 먹거리 발길 잡아
3·1만세운동 역사의 현장…매년 재현행사 개최
20분 거리 옹기마을 내달 울산옹기축제
남창 장날과 토요일이 겹친 지난 8일 울주군 남창옹기종기시장의 모습. 상인회 추산 1만명 이상 몰려든 관광객으로 시장 통로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최수상 기자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도다리는 봄철에 가장 맛있지요?"
"아닙니다."
"예?"
"365일 맛있습니다."(웃음)
너스레웃음도 잠시. 길고 날카로운 회칼이 몇 차례 번득이더니 순식간에 싱싱한 도다리회가 도마 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비교적 두툼하게 썰린 도다리 회는 미색이지만 표면에는 영롱한 빛깔이 감돌았다. 이보다 더 신선할 수 없을 것이다. 입맛이 떨어지는 봄철, 미식가들이 결코 지나칠 없는 게 도다리 회다. 한참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 온 아주머니 두 분. 회가 도시락 포장지에 담겨 자신들의 손에 건네지자 얼굴에는 옅은 웃음기가 가득해졌다. 다른 한 손에 신선한 상추와 깻잎, 달콤새콤한 초장이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도다리 회무침을 상상하자 군침을 주체할 수 없었다.
4월 장날에 울산 울주군 온양읍 남창옹기종기시장은 제철을 맞은 도다리뿐만 아니라 돌문어, 전복, 멍게 등 울산 앞바다에서 잡았거나 양식장에서 갓 출하된 싱싱한 해산물로 가득하다.
길이가 100m에 달하는 시장통 한가운데는 방금 따 온 것 같은 각종 제철 나물과 채소가 풍성한 할머니들의 노점이 장사진을 이뤘다.
풋고추가 가득한 실린 리어카를 끌고 경쟁에 나선 한 장사꾼이 "고추가 살아있다. 고추가 살아있다"라며 다소 야릇한 말로 이목을 집중시키자 할머니들은 오히려 재밌다고 웃는다.
한편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꽃무늬 블라우스 봄바람에 살랑거렸고, 맞은편에는 말끔한 광택을 자랑하는 ㈜태화의 말표 고무신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상품과 각종 먹거리들은 3보 앞을 나아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나서야 시장통 끝 지점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하지만 여기는 또 다른 남창옹기종기시장 여행의 시작점이었다.
울주군 남창옹기종기시장의 선지국밥은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타왔다. 남창장의 국밥이 유명해 진 것도 이 선지국밥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창장에는 공식적으로 7곳의 국밥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최수상 기자
■국밥 한 그릇을 위해 어르신도 '웨이팅'은 기본
세계 유명 맛집들의 공통 특징은 줄 서기 즉 '웨이팅'이다. 특별한 맛을 경험하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 기다리는 것쯤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현재 남창 장날에서는 젊은 세대가 아닌 60대 전후의 중장년층과 어르신들의 웨이팅을 쉽게 볼 수 있다. 남창장 중간 지점에는 국밥 식당이 늘어서 있다. "무슨 경품을 주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줄을 선 줄 알았습니다. 백종원도 부럽지 않겠어요." 아기를 안고 나온 30대 부부가 내막을 알고는 놀란다.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는 이들 부부는 남창 국밥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국밥집 한 곳은 오전 10시를 갓 넘겼는데 벌써부터 대기 줄만 35명에 달했다.
식당 문을 들어서자 한 그릇 9000원 하는 선지 국밥이 침샘을 자극하는 특유의 냄새를 풍기를 뜨겁게 반긴다. 따로국밥, 내장국밥, 소머리곰탕과 소머리국밥, 각종 수육까지 즐길 수 있다. 장터 인근에 울산 제과제빵의 최고 장인이 운영하는 '구떼 과자점'의 빵 맛도 기가 막힌다.
기다림이 힘들다면 장터 곳곳에서 판매하는 국수, 부추전, 튀김, 족발, 묵 등을 맛보는 것도 추천한다. 기대 이상의 맛이다. 부추전에 막걸리 한 사발은 아픈 다리를 조금 쉬게 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된다.
■3.1 만세운동 벌어진 유서 깊은 창고 마을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남창옹기종기시장은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이다.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남창(南倉)'이라는 지명이다.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쪽 창고라는 뜻이다. 울주군에 따르면 온양읍 일대의 옛 지명은 공수현이다. 조선 숙종 때인 1679년 공수현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백성들로부터 거둔 곡식을 임시 저장하기 위한 창고가 만들어졌고, 고령 김씨 공수파가 집단으로 거주하며 창고관리와 관련 업종에 종사했다고 전해진다. 시장 주변에 오래전부터 온양읍사무소, 남창역, 우체국, 경찰파출소 등이 주요 기관이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창 5일장은 지난 1916년부터 문을 열었다. 3일과 8일에 장이 섰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개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매년 4월 8일 장날에는 당시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남창장이 발전한 것은 창고가 들어선 배경과 같다. 내륙과 해안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산 공업화 이후 따른 농어촌 인구의 유출 등으로 남창장도 위기에 처했다. 자가용을 중심으로 한 교통수단의 발달은 온양읍 주민들까지 울산과 부산의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이용을 부추겼다. 워낙 큰 장이기 때문에 명맥을 유지할 정도는 됐지만 시설 노후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다행히 동해선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반전의 기회가 찾아 왔다.
남창옹기종기시장 장날이면 하우스 재배가 아닌 제철에 나는 각종 채소와 과일, 나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남창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16년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곳에서도 4월 8일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8일 이순걸 울주군수와 울주군의회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울주청년회의소 주관으로 남창 기미 4.8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렸다. 사진=최수상 기자
■동해선 철길 위에 장이 섰다, 역시 전철 역세권
남창옹기종기시장의 장날은 웬만한 대형마트를 능가할 정도를 인파가 몰린다. 한 번 들어선 시장 안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을 정도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왔을까?
남창옹기종기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장날이면 시장 바로 옆 동해선 남창역에는 부산과 울산에서는 광역전철을 타고 온 손님들이 쏟아져 나온다.
남창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은 것은 지난 2021년 12월 28일 부산 부전역~울산 태화강을 운행하는 동해선 광역전철이 개통하면서부터다. 앞서 부산~울산간 고속도로 개통이 있었지만 남창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철길이 역할을 넘겨 받았다.
김규백 상인회 회장은 "매시간 부산과 울산에서 온 관광객들이 도착하고 떠나고를 반복하면서 예전에는 오후 4시면 장이 마쳤지만 이제는 저녁 무렵까지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철이 생긴 후 평일 장날에는 3000명가량이 찾고 주말과 휴일이 겹치면 1만명이 넘는다"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시국에도 꾸준했다고 한다. 남창이 전철 역세권을 형성하자 온양읍 인구도 증가해 3만명까지 늘어났다. 인구감소 속에 시골지역 인구가 늘어난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상인회 측은 현재 장터가 비좁다고 판단해 울주군에 공간 확장을 요청했고 원만한 진행이 이뤄지고 있다.
남창옹기종기시장에서 도보로 20분, 약 1.5㎞ 떨어져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의 풍경
■5월 초 울산옹기축제, 대운산과 울산수목원도 인기
남창장 상인들이 김칫독과 간장독 등으로 사용하는 옹기는 울산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의 특산물이다. 이 마을은 옹기 제작에 쓰이는 흙의 품질의 전국에서 가장 좋다고 평가 받아 예전부터 전국 각지의 장인들이 모여든 곳이다. 남창역에서 자가용으로 3분,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하는 약 1.5㎞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 옹기의 역사와 제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옹기장이 실제 거주하고 있고 가마와 생산 공장이 가동 중이다. 어린이날인 오는 5월 5일~7일까지 울산옹기축제가 개최된다. 각종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 구경거리가 풍성하게 준비됐다.
5km 떨어진 곳에 울산 12경 중 하나인 내원암 계곡을 품고 있는 대운산도 유명하다. 울산수목원과 국립 치유의 숲이 있다. 5월에 철쭉제가 열리고 여름철에는 피서 인파로 가득 찬다.
ulsa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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