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조한 국산콩 자급률, 정부 노력에도 '빨간불'
제조원가 높고 유통도 어려워 자급률 3분의 1에도 못미쳐
수입콩 콩매로 그나마 수입콩-국산콩 가격차이 줄일 수 있어
사진=농림축산식품부 제공
[파이낸셜뉴스]#."국산 콩을 고집하는 가공업체는 결국 다 도산할 것입니다."
지난 20여년간 토종 콩 식품 연구 개발에 매진해 온 함정희 함씨네토종콩식품 대표(71)는 이같이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함씨는 수입 콩의 범람으로 단가를 맞추지 못하는 토종 콩 시장이 빠르게 사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씨의 업체도 공장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함씨는 "최근 들어 식량 자급이 국가 경영에 큰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며 "국산 콩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국산 콩 자급률 목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식량 안보 강화를 위해 국산 콩 자급률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2030년에도 자급률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수입 콩 난립을 막기 위해 정부는 공매제와 전략작물직불제 등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국내 콩 업자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콩 자급률 25%도 못 넘어
2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44.4%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 중 곡물자급률은 2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콩 자급률은 23.7%에 불과했다.
콩 자급률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이유는 제조 원가가 비싸고, 그만큼 유통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수입 콩의 경우 대다수 유전자변형생물체(LMO, GMO)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유전자변형생물체 대두는 총 99만4000t이 수입됐으며 666만 달러에 이른다.
2022년산 기준 국산 콩 도매가격은 1㎏당 5879원인데 수입 콩은 1400원 수준으로 가격 차가 크다. 함 대표는 "국내산 콩을 이용 하면 바보 취급받는다"며 "대다수 업자들이 값싼 수입산 콩을 이용해 두부 등을 만든다"고 말했다. 가격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아 콩 생산업자들이 콩 재배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생산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국산 콩 생산량은 그동안 재배면적 축소로 계속 떨어지다가 정부의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에 힘입어 상당히 회복됐지만, 사업 축소와 긴 장마로 인한 흉년이 겹쳐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다른 대책이 없을 경우 콩 자급률은 2030년에도 26.8%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원산지 위조'도 기승을 부린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5일부터 올해 4월 25일까지 1년간 원산지 표시 위반 업체 1772곳 중 '콩·두부류' 원산지를 거짓으로 표시한 업체는 182곳으로 전체 10.2%에 달했다. 이에 농관원은 지난 2월 13일부터 28일까지 기획단속을 실시해 원산지를 거짓으로 표시한 56개 업체는 형사입건 하고,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42개 업체에 대해서는 총 1014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대니골 마을기업 행원정에서 메주를 만들기 위해 가마솥에 삶은 콩을 건지고 있다./사진=뉴스1
■"국내 콩 보호 위해 공매 확대해야"
생산업자들 사이에는 정부의 수입콩 공매 물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입콩 공매는 최고가 낙찰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수입콩 직접공급(직배) 방식에 비해 가격이 높아진다. 현재로선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값비싼 국산콩과 값싼 수입콩의 가격차이를 줄여줄 수 있는 대안중 하나이다.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국산 콩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콩 직배 물량을 줄여왔다. 정부는 콩을 세계무역기구(WTO) 저율관세할당(TRQ) 물량 한도 내에서 국영무역과 수입권 공매를 통해 수입하고 있다. TRQ란 저율관세할당으로,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저율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제도다.
직배는 판매가격을 정부가 정해 공급하는 방식인데 현재 1㎏당 1400원에 공급하고 있다. 반면 공매는 실수요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해 희망 물량을 최고가로 낙찰받는 것으로 경쟁 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다. 이같은 차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공매 방식의 수입 콩 공급가격이 직배 방식보다 높게 형성된다.
직배는 2017년 당시 16만3668t에서 지난해엔 13만7181t으로 줄었다. 반면 수입콩 공매물량은 2019년 3433t, 2020년 4000t, 2021년 8200t, 2022년 3만8000t 등 지난 4년간 꾸준히 늘었다.
국내 콩 생산자들은 공매제를 더 확대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는 최근 '국산 콩 산업 발전 건의문'을 정부에 전달했다. 연합회는 건의문에서 "국산 콩 생산자들은 생산비도 제대로 반영받지 못하는데, 정부는 수입 콩의 무분별한 직배 공급으로 국산 콩농가들의 재배 의욕을 떨어뜨리고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적자만 누적시키고 있다"며 "TRQ 의무 도입량을 제외하고는 수입 콩 추가 물량을 100% 공매제로 전환해 방출할 것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김운기 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 전무는 "직배 방식의 수입 콩 공급 단가가 너무 낮아 직배 공급 물량이 늘어날 경우 국산 콩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반면 공매 방식이 확대 운용된다면 국산 콩과 가격 격차를 좁힐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내용을 건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수입 콩 실수요 업체들이 공매제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 등 중소 두부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11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만난 간담회에서 수입 콩 공매를 폐지하고 직배를 통해 동일 가격으로 실수요자들에게 공급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국내 콩 자급 필수적
국산 콩 업계에선 '식량 안보' 차원에서 정부의 국산콩 산업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량 안보는 더 큰 화두가 됐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월 24∼27일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식량안보 인식 및 대응방안 조사’를 시행한 결과 ‘국내 식량자급률 제고가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80%로 압도적이었다. ‘해외 식량공급망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각각 13%, 7%에 그쳤다.
정부는 식량 자급률 목표를 과감하게 설정했다.오는 2027년까지 식량자급률을 55.5%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콩 자급률도 43.5%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비상시 대응력을 제고하기 위해 국산 콩 비축 매입량을 단계적으로 확대, 2027년 5만5000t까지 늘릴 방침이다.
한 국산콩 업계 관계자는 "모든것을 자유시장경쟁 논리로만 따진다면 지금 국산콩 시장은 고사돼야만 할 것"이라며 "국산 콩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 상직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정부나 대기업 등이 미래를 내다보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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