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스타 거리에 25일(현지시간) 해리 벨파폰테 사진 주변으로 꽃이 장식돼 있다. 가수이자 영화배우이면서 시민운동가였던 벨라폰테는 96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생을 달리했다. AP연합
‘칼립소의 왕’으로 부르는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해리 벨라폰테(96)가 25일(이하 현지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벨라폰테는 ‘더 바나나 보트 송(데이-오)’를 부른 유명 가수이자 브로드웨이 뮤지컬 ‘칼멘 존스’를 각색한 영화에서 주연 배우로 활동하기도 한 배우이기도 하다.
벨라폰테는 은퇴 이후 더 멋진 삶을 살았다.
벨라폰테는 시민 인권 운동에 투신해 전략가, 기금 모금기획자, 중재자로 활약했다. 인권 운동으로 자신의 엔터테인먼트 업계 경력을 모두 날릴 뻔하기도 했고,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벨라폰테는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종종 벨라폰테의 으리으리한 뉴욕 아파트를 찾아 쉬면서 인권 운동 전략을 논의하거나 인권 운동 지도자로서의 짐을 잠시 내려놓기도 했다.
벨라폰테는 독서광이자 불공정한 상황에 분노하는 인물이었다. 파출부로 일하던 가난한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의 성장배경은 그를 정치적인 자각의 길로 이끌었다. CNN에 따르면 벨라폰테는 1927년 뉴욕에서 가난한 카리브해 이민자 출신 부모 밑에 태어났다. 상선 요리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그가 어릴 때 집을 나가는 바람에 홀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는 “예술가로서 언제 인권운동가가 되려고 결심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했다”면서 “나는 예술가가 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인권운동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벨라폰테는 예술이나 인권운동 모두 서로 도움을 준다면서 그렇지만 인권 운동이 우선이라고 못박았다.
벨라폰테의 시민운동 활약은 엄청나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주도했고, 자연스레 넬슨 만델라의 친구가 됐다. 또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 치료 등의 캠페인에도 참여했고,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친선대사도 지냈다.
1985년에는 밥 딜런, 마이클 잭슨,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유명 가수들의 프로젝트 ‘위 아 더 월드’에도 참여해 이들과 함께 음반 제작으로 아프리카 기아 구호를 위한 기금도 마련했다.
벨라폰테는 정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라고 비판했고, 제이 Z, 비욘세 등 흑인 유명인사들을 사회정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도 갈등을 빚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당시 오바마 상원 의원을 하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바람에 오바마가 당시 “언제쯤 봐 주겠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벨라폰테의 답은 “통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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