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낙하산인사 전수분석 (10) · 끝
'한국판 플럼북' 도입해 전문성·객관성 확보해야
낙하산 실명제 등 책임 있는 추천 필요
공공기관 기관장도 인사청문소위 공개검증 방안도 고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차전지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22년 3월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공공기관 임원의 정치권 낙하산 논란은 정권마다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의 공공기관 임원 임명은 필요하다는 것이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대체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 낙하산 인사 중에 공공기관과의 업무 연관성이나 최소한의 전문성도 갖추지 않은 채 선거 운동을 함께한 대선 공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낙하산 인사가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실패한 낙하산 인사의 임명 과정을 조사해 책임을 묻는 동시에 이른바 '한국판 플럼북'을 도입해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 공개적으로 추천하고 임명하는 전면적인 프로세스 개선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임원추천위원회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더 민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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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플럼북 도입
27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낙하산 관행을 완전히 뿌리 뽑기는 어렵지만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한국판 플럼북 도입을 주요 대안으로 제안했다. 플럼북(Plum book)은 미국 대통령의 인사지침서로,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연방정부 9000여개 직책을 열거하고 각 직책의 임명 방식과 조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를 한국식으로 차용해 인사혁신처가 국가 주요직 관한 직무, 자격조건, 임명 방식·절차, 임기, 보수 등을 명시한 '국가 주요직위 명부록'을 만들고 대선 다음날 이를 공개하자는 것이다. 플럼북이 발간되면 부처 장관, 공공기관장 뿐만 아니라 정치권 낙하산의 '꽃보직'으로 불리며 가장 많은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임명되는 감사나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이유로 임명 절차를 비공개로 하는 비상임이사 등도 전문성을 갖췄는지 DB를 통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추천할 수 있어 낙하산 인사 논란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는 한국판 플럼북 도입을 법제화하는 '국가공무원법 일부 개정안'이 이미 발의돼 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한국형 플럼북 법안이 통과되면 대선 이후 반복되어 온 '정실주의'에 의한 낙하산 인사 논란을 해소하는 한편 국정철학을 공유하면서도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추천을 책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른바 '낙하산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추천하는 사람이 내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해야하는데 지금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임추위, 공관위에서 걸러서 사실상 내정된 상태로 진행되는 것"이라면서 "주무 장관이 '이 사람'을 하자고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박 교수는 "부적격 낙하산, 무자격 낙하산이 문제인 것이지 낙하산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라면서 "기관장이나 감사는 경영평가를 받는데 D나 E를 받았는데 공운위나 임추위에서 찬성표를 던졌다면 그 사람들을 해촉시키는 등 용기를 가지고 막을 이유를 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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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민주성·독립성 '병행'
공공기관 운영의 민주성·독립성 확립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현재의 임추위 추천→공운위 심의·의결→대통령·장관 임명 구조는 사실상 정부의 '코드 인사'가 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임추위와 공운위 구조가 현재보다 더 민주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나 노동계 위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와 같은 주요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청문 선임 철차 과정을 밟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공운위에 일종의 인사청문 소위원회를 두고 시민사회는 물론 각 분야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열린 구조로 검증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임추위가 구성되지 않는 곳은 의무가 없기 때문인데, 이 의무를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대해 임명 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공공기관의 임원 추천과 선임 과정에서 일종의 시민 청문회 같은 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대안이 낙하산 관행을 완전히 뿌리뽑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에 준용할 수 있는 취업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공직에 있던 사람이 재취업을 하는 것은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면 되지만 정치권 인사는 그런 것조차 쉽지 않다"면서 "독립성과 전문성은 당연히 필요하고 이런 것들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심사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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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 '알박기 인사' 악습 막아야
역대 정권마다 반복되는 소위 '알박기 인사'의 악습을 끊어내기 위해서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본지가 370개 공공기관 임원 3086명(당연직 제외)을 전수조사한 결과,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던 야권 인사 508명 중 지난해 1월부터 5월 사이 임기를 시작한 친민주당계 인사들은 52개 기관에 7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대선이 열리기 두달 전 임명된 이른바 '알박기 인사'인 셈이다.
이에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법안이 여권에서 발의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2.5년으로 하고 연임이 가능하도록 조정해야 한다"면서 "대통령 임기 5년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완전히 일치시키고 차기 정권이 들어서면 새 정부 공공기관장을 일괄 임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 일치 역시 정치권 낙하산 고리를 끊기에는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임기 일치는 알박기 방지는 될 수 있지만 낙하산 방지 용도는 되지 않는다"며 "결국 공공기관장이나 이사들의 자격 요건을 강화시켜 전문성을 높이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서영준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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