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테라·루나 방지책
규제 심할수록 종속 상기해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년간 공전을 거듭해온 가상자산 법제화가 빛을 보게 됐다. 4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둔 1단계 법안이다.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법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가상자산 법안은 앞으로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의 최종 의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이번 1단계 법안은 이용자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 및 처벌, 감독 및 검사 등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1단계 법안이 속도를 내면서 발행·공시 등 내용을 담은 2단계 입법도 급물살을 탈 길이 열렸다.
그동안 가산자산 입법을 둘러싸고 국회의 책임 방기 논란이 지속됐다. 지난해 5월 50조원 규모의 피해를 낳은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며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다른 법안 심사에 밀려 논의 열기는 금방 식었다. 법안 논의가 한참 방치된 가운데 3월 23일 해외로 도피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이어 같은 달 29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가상자산 투자 피해자 납치·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각종 사기사건에 대한 감독이나 규제 주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그제야 가상자산 규제 공백의 폐해를 절감하며 뒤늦게 법안 처리에 나선 것이다. 화재나 건축붕괴 등 사건이 터지고 나면 사후약방문 격으로 뒷수습에 나서는 행태가 가상자산 관련법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입법에 시동을 걸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가상자산법의 출발이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법안의 본질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상자산 제도를 만들 때 빼놓을 수 없는 양대 관점은 '투자자 혹은 이용자 보호'와 '혁신'이다. 그런데 법을 처음 만들다 보니 이용자 보호에 과도하게 쏠렸다.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는 가상자산을 혁신으로 인정하는 관점이 뒤로 밀렸다는 얘기다. 법안 자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규제투성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가령 주식시장에 적용되고 있는 불공정거래 규제방식을 가상자산 시장에 그대로 갖다 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시장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 모든 유형의 가상자산에 일률적으로 동일한 규제 잣대를 대는 일도 재검토해 봐야 한다.
이번 1단계 법안이 정무위 소위를 통과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오히려 1단계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강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2단계 법안에서도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감안한 실용적 법안이 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쓸 것으로 믿는다.
투자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규제 그물을 펼쳐놓는 행정 편의주의를 남발해선 안 된다. 규제가 많은 가상자산은 시장에서 외면받게 돼 있다. 우리나라 가상자산 법안의 규제가 글로벌 수준에 비해 심하면 심할수록 타국에 종속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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