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전성시대다. 달달한 자장면 몇 그릇을 비우고 피자 몇 판으로 배를 채웠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살살 녹는 디저트로 입가심을 한 뒤 탄산음료 그리고 주스까지 들이켜야 직성이 풀린다. 먹는 것 가지고 나무라면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 많은 음식비용과 건강을 조금 염려하는 것뿐이다. 웬만한 식음료에 듬뿍 들어가는 '설탕'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설탕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최근 설탕 선물가격이 t당 700달러를 넘어섰다. 2011년 11월 이후 12년 만이다.
비슷한 기간 설탕의 원료인 원당 선물가격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원당과 설탕 선물가격이 급등하면 또 하나의 인플레이션 자극요소가 될 수 있다. 원당을 수입하는 제당업계는 당연히 가격을 인상할 게 뻔하다. 원재료비에 설탕 비중이 10%가량 차지하는 제과업계도 제품 가격을 올릴 태세다. 빵과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등 가공식품에 설탕이 빠진 품목을 찾을 수 없을 지경이다. 한식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에도 설탕이 많이 사용되기에 외식물가도 오를 것이다. 설탕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가공식품발 '슈거플레이션(슈거+인플레이션)' 위기가 덮칠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는 설탕발 인플레이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까. 아마 흔해 빠진 가격 억제지침을 내릴 것이다. 해당 부처 장관이 가공식품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가격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업자들의 팔을 비틀어 가격인상을 틀어막는 방식은 '반짝' 효과에 그칠 뿐이다.
바람직한 정책은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성을 잘 읽어내고 타이밍을 잘 맞출 때 진가를 발휘한다. 설탕 가격 상승국면을 국민건강 정책 도입을 위한 '타이밍'으로 활용해봄 직하다. 우리나라는 설탕중독에 빠져 있다. 한국인이 하루에 섭취하는 설탕량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량보다 3.5배나 많다고 한다. 설탕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당뇨병, 비만, 심혈관계 질환 및 암 발병률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설탕은 악마의 백색가루라고 불린다.
설탕은 중독성이 워낙 강해 소비자 스스로 섭취량을 조절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설탕을 규제하면 식음료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 설탕에 길들여진 소비자들도 먹을 권리를 내세우며 정부에 맞선다. 다른 나라들은 설탕세를 도입하거나 학교에 설탕이 가미된 식음료 자판기를 없애고 과당 제품에 경고문구를 넣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제자리걸음이다.
시대적 당위성이 명쾌하다면 정책은 훈풍을 탈 수 있다. 쌀이 남아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자는 제안은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굳이 흰 쌀밥을 다 먹어야 할 동기가 마땅치 않은데 누가 그 제안을 따르겠는가. 옛날 새마을운동처럼 시키면 따르는 시대도 아니다.
다른 예로, 원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는 유럽에 비해 과도하기 때문에 절약 캠페인이 갖는 설득력은 높다.
그러나 산업용 전기 사용이 가정용보다 에너지 소비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면에서 일반 가정의 에너지 절약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어차피 계속 오를 것 같은 설탕값 문제도 해결하고 국민의 건강도 챙기는 타이밍 정책을 구사하면 어떨까. 최근의 설탕 선물가격이 식음료 제품에 직접 반영되는 시점은 약 6개월 뒤로 추산된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연말까지 대처할 시간이 남아 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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