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오피스텔에 거주한 적이 있다. 세종청사에 위치한 정부부처에 출입하던 시기다. 당시 집을 구하기 위해 세종시로 향했다. 공인중개소 한 곳에 전화로 방문 약속을 먼저 잡았다. 하지만 초행길에 약속한 중개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구하려던 오피스텔 근처 다른 중개소로 들어갔다. 해당 중개사는 오피스텔 임차료를 문의하자 시세를 알려줬다. 전화로 약속했던 곳에서 말한 것보다 절반 가까이 쌌다. 보증금과 월세 모두 그랬다. 약속했던 중개소를 못 찾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세종시에 먼저 거주했던 선배들에게도 재차 가격을 확인했다.
이후 임차계약은 빠르게 진행됐다. 입주할 오피스텔 내부를 살펴보고 계약서를 썼다. 집 주인은 오지 않느냐고 문의했지만 중개사가 모두 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임대인과 통화를 부탁했다.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임대인과 간단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안심이 됐다. 임대인은 임대료와 간단한 공과금 등 기본적인 사항 외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임대인 얼굴조차 보지 않은 채 계약을 했다. 집과 같은 건물에 바로 위치한 중개소니 의심할 것도 없다고 했다.
다행히 8개월간을 무사히 거주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게 첫 부동산 거래였다. 물론 회사 명의 계약이기는 했지만 첫 거래의 긴장감이나 불안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전세사기가 잇따르면서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부풀려진 임차료로 계약을 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중개사가 대리로 계약한 집주인이 혹시 '빌라왕'과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전세사기가 번져가던 시기 집값은 비정상적으로 폭등했고, 우후죽순 빌라를 사들인 빌라왕이 있었다. 그리고 불법거래를 알선한 중개사들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전세금을 고스란히 날리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 거주 중인 전셋집을 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제는 전세계약서만으로는 신뢰를 담보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정부가 드디어 전세사기 대책 특별법에 잠정 합의하면서 입법을 논의하고 있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과거와는 달라진 경제·사회 여건 속에서도 계약서만으로도 믿고 거주할 수 있게 하는 안전망이 돼야 할 것이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건설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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