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 단둥서 ‘워싱턴 선언’ 대응 논의
- 북·중·러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 워싱턴 선언, ‘중·러까지 겨냥’ 해석
【베이징·도쿄=정지우 김경민 특파원】 한국과 미국 정상이 대북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의 ‘워싱턴 선언’을 발표한 이후 한·미·일본, 북한·중국·러시아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침략 의지가 반영된 적대시 정책”이라거나 “일부러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반발했고, 러시아도 “세계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불쾌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확장 억제의 실행력이 획기적으로 강화됐으며, 대북 억제력 강화는 필요한 조치”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여기다 한일 정상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나 북핵 대응 등을 논의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3국 대 3국 대결 구도가 심화되는 모양새다.
북·중 단둥서 ‘워싱턴 선언’ 대응 논의
중국 내에서 미묘한 움직임은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성명 발표 수일 전부터 포착됐다. 이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은 “선언 발표가 있기 전인 4월 24~25일 북한의 실무진들이 신의주에서 다리를 건너 단둥으로 넘어와 중국 측과 만났다”고 전했다.
단둥은 북·중 접경지역이다. 북측 인사가 베이징까지 오는 것보다 시간을 줄일 수 있고, 회의 내용을 북한 지도부에 서둘러 보고하는데도 유리하다. 또 북·중 무역의 중심이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 등 보안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양측의 회의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사전에 설명을 들은 ‘워싱턴 선언’ 내용을 북한에게 전달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소식통은 주장했다. 중국 측이 북한 측 인사를 단둥으로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미국이 성명 발표 2~3일 전 워싱턴에 있는 주미중국대사관을 통해 관련 내용을 전했고, 내용에 상당히 심각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 북측에 곧바로 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또 이와는 별도로 베이징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과도 비슷한 시기에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도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워싱턴 선언 관련 내용을 이미 중국에 설명했다면서 한국 등 역내 국가의 연쇄 핵무장을 막기 위한 노력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최선”이라고 확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워싱턴) 선언이 중국과 직접적인 충돌 요인이 아니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동맹 차원의 대비 방안이기에 중국으로서는 이를 우려하거나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겠다는 취지로 (미국이) 사전 브리핑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북·중·러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중국 측은 북한과 만남에서 안정되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측에선 “괴멸 시키겠다”는 등 감정이 뒤섞인 거친 언사도 여러 차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북한은 워싱턴 선언 이후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윤 대통령을 향해 각각 “미래가 없는 늙은이”, “그 못난 인간”이라고 비난하면서 ‘워싱턴 선언’으로 인해 “보다 결정적인 행동에 임해야 할 환경이 조성됐다”고 위협한 것도 선언 발표 이틀 후인 지난 4월 29일이다.
이처럼 북한의 반응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은 것 자체가 중국과 러시아 등과 함께 대응 수위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소식통은 풀이했다.
북한의 반박도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4월 30일 논평에서 “(한미가) 반공화국 핵전쟁책동에 계속 집요하게 매여 달리려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상응한 군사적 억제력을 키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지난 2일 북한 신천박물관에서 진행된 청년학생 집회에서는 한미 정상을 겨냥한 ‘허수아비 화형식’도 진행됐다. 북한이 한미 정상에 대한 화형식까지 보여준 것은 전례가 없다. 그만큼 ‘워싱턴 선언’에 대한 적개심이 고조됐다는 방증으로 분석됐다.
중국 또한 한반도 비핵화에 어긋난다며 발끈했다. 중국은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이 거론된 것에 대해서도 상당히 불편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전 대만 관련 발언에도 “불장난하면 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성명을 내고 “미국과 한국의 핵 합의는 역내 및 국제 질서를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며 “이러한 합의는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균형을 깨면 러시아도 동맹국을 규합해 군비 확대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 언급에도 “양국 관계가 파탄이 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은 “중국이 5월 초 북한으로 관계자들을 보내 후속 대책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책이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로 생각하고 있다. 러시아가 지금까지 해오던 군사 기술 지원에서 직접적인 무기 지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군사 지원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북 소식통은 이와 관련, “북측 고위급이나 실물진이 단둥에서 중국 측과 접촉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지만, 있을 수는 있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알아보겠다”고 했다.
워싱턴 선언, ‘중·러까지 겨냥’ 해석
북·중·러가 한·미동맹 강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이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겨냥하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선언에 담긴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이 한반도 기항은 결국 핵탄두를 싣고 한국의 항구를 정기적으로 들른다는 뜻이다.
또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한국 재래식 지원을 공동 실행하고 기획한다’는 문구도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통합억제전략을 염두에 둔 내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예컨대 대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했을 경우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통합돼 다양한 정보 자산 등을 활용한 지원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수는 최근 한 방송에서 “통합억제라는 것은 우방국들과 동맹국들의 군사력까지 미국이 하나로 통합해서 사실 중국의 방어망을 뚫겠다는 어떤 그런 개념을 갖고 있다”면서 “꼭 한국의 총 든 군대가 그쪽에 간다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지난 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워싱턴 선언을 비난하며 더 강력한 핵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밝히는 등 반발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북한의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은 남조선과 합동군사연습을 확대하고 일본·남조선과 방위협조를 강화해 ‘남방 3각’을 형성하려 한다"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그것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대결 위험성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통화에서 “SSBN의 한반도 기항, 전략핵폭격기의 한반도 기착 같은 경우는 북한의 예상을 뛰어넘는 합의”라며 “북한이 보유한 핵 억제력을 능가하고 이를 상쇄시키는 한미의 대응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소식통은 “중국은 일본 제약회사 임직원을 스파이 혐의로 자국 내에서 체포하면서 시진핑 국가 주석이 광저우 LG디스플레이 공장을 이례적으로 직접 방문했다”며 “이는 경제 협력에서 일본 비중을 줄이고 한국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김경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