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가스公 재무구조 악화 불구
여당 개입하며 2분기 인상폭 축소
전기위원회 결정권 역할 미미 지적
산업부서 분리해 권한 이전 등 거론
에너지요금의 정치화가 도마에 올랐다. 국제 에너지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등 큰 폭의 에너지요금 상승 요인이 있음에도 정치권에 입김에 휘둘려 2·4분기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이 소폭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요금에 대한 법적 권한도 존재하지 않는 여당이 에너지 가격 결정권을 갖는 등 월권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이 때문에 현재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는 전기위원회를 독립시켜 금융통화위원회 수준으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권에 휘둘린 에너지요금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지난 16일부터 2·4분기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을 각각 kWh(킬로와트시)당 8.0원, MJ(메가줄)당 1.04원(5.3%) 인상했다. 이는 전분기 대비해서 5.3%오른 수준이다. 1·4분기에는 전기요금 13원, 도시가스요금은 동결됐다. 지난해말 산업부가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는 한 인상금액은 각각 ㎾h당 약 51원, MJ당 39원이었다.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 모두 상반기 중 필요한 인상분의 절반도 인상하지 못한 셈이다. 한전은 이번 요금인상으로 전기판매 수입이 2조6606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1분기에만 (1∼3월) 6조1776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크게 부족한 규모다. 가스공사 역시 지난 겨울철 '난방비 대란' 충격으로 1분기 요금을 동결한 데 이어 2분기 소폭인상에 그쳐 재무구조 개선과 다시 한번 멀어졌다.
이처럼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이 소폭에 그친 것은 에너지 요금의 정치화 때문이라는게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보통 전기요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한국전력이 조정안을 작성해 산업부에 신청하면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 심의·의결 절차를 거쳐 산업부가 최종 인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물가안정법에 따라 산업부가 미리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도록 돼 있다. 도시가스요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이같은 절차가 무시된 것이 이번 2·4분기 에너지 요금 결정 과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27일 "법률안과 예산안을 수반하지 않는 정책도 모두 당정 간에 긴밀하게 협의하라"라고 지시했다. 이후 3월 31일 발표가 예정됐던 에너지가격 인상안에 여당인 국민의 힘이 개입하면서 발표가 계속 미뤄져 45일이나 늦은 지난 15일에야 결정됐다.
문제는 내년 총선까지 여당이 에너지 요금에 개입할 것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들어서는 3·4분기에도 한전이나 가스공사의 재무구조 개선보다는 지지율 관리를 위해 에너지 가격을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적 에너지 위원회 설립 필요
이처럼 정치권이 에너지 요금에 개입하면서 독자적인 에너지 가격 결정기구의 필요성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현재 산업부 산하의 전기위원회 등은 전기사업 허가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전기요금 결정권과 관련해서는 그 역할이 미미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요금 결정에서 산업부와 기획재정부의 영향력을 받아온데다 정치권까지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전기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위원장을 장관급으로 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급으로 격상하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산업부에서 분리해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모델을 구축해 전기는 물론 가스요금을 포함한 에너지가격 결정권한을 주는 방식도 거론된다.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 기관으로 만들어 정치 등 외부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원가주의에 기반해 전기·가스요금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기존처럼 산업부의 소속기관으로 두되 산업부 장관이 가진 전기요금 결정 권한 등을 전기위원회로 넘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실제 산업부는 지난해 전기위원회 조직 개편을 위한 연구용역 발주했으며, 오는 6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 발표 이후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구결과가 나와도 실제 반영은 내년 총선 이후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미 지지율을 위해 요금 결정권한을 가져간 여당이 이를 바로 돌려줄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열 가격도 시장 원리에 맞게 제대로 작동해야 에너지 수요 관리 및 효율 향상이 제대로 이뤄진다"며 "에너지 정책이 정치와 이념에 너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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