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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인권 지키는 사이 피해자는 피눈물

폭력범죄 구속영장 기각률 37%
감금·폭행 100억 뜯은 일당도
혐의 증명 부족 이유로 기각
영장 기각 뒤 살인 이어지기도

#. 최근 "코인 투자 수익금을 내놓으라"며 100억원 상당을 강제로 빼앗고 피해자들을 감금·폭행한 김모씨(35) 등 일당이 검찰에 넘겨졌다. 당시 강남경찰서는 감금 혐의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범죄 혐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 지난해 2월에는 서울 구로구에서 전 연인을 폭행·협박하던 A씨(56)가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전 연인을 찾아가 흉기로 살해했다. A씨는 지난 2월 11일 오전 피해자가 자신을 고소한 것을 알고 같은 날 오후 5시쯤 B씨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가 난동을 부려 업무방해죄로 현행범 체포됐다. 검찰이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지만 A씨는 기각 3일만에 범행했다.

5대 강력범죄(폭력·살인·강도·강간 등 성폭력 범죄·절도)중 폭력범죄의 구속영장 기각률이 유난히 높아 논란이 되고 있다. 폭력범죄는 매년 매년 3000건대 이상 구속영장이 신청되지만 "혐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되는 사유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장이 기각된 후 피해자를 다시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경우도 있어 폭행범죄에 대한 영장 심사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폭력 범죄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률은 37.2%로 나타났다. 2년 전(31.8%), 1년전(34.1%)에 비해 높아진 수치다. 같은 기간 5대 범죄 구속영장 기각률을 보면 △살인 10.1%△강도 13.2% △강간 등 29.7% △절도 19.8%로 나타났다. 5대 범죄 중에서 유일하게 폭력만 구속영장 기각률이 30%를 넘는 것이다.

전문가와 일선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인권에 대한 의식 강화와 폭행 범죄의 특수성이 폭력 범죄 구속영장 기각률을 높이고 있다고 본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단순 폭행인 경우에는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며 "원래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피의자 인권 측면에서 구속 기준이 되는 증거 인멸 염려 또는 도주 우려 여부를 엄격하게 보는 것 아닐까 추측된다"고 지적했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폭력 범행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지인 사이에 벌어진 폭행은 신원이 확실하다는 이유로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절도보다 기각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피의자 인권을 지켜주는 사이 피해자가 다시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코인 투자금 강요 사건의 피해자는 지난 10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강력범죄수사대의 브리핑 자리에서 지난 2021년 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지속해서 폭행과 협박을 당했지만 그동안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법적으로 김씨에게서 보호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김씨가 지난 2021년 한해 동안 그냥 길 가는 사람을 폭행해 경찰 조사받은 것도 수차례"라며 "경찰에 잡혀갈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보란듯이 나왔다"고 토로한 바 있다.

특히 스토킹 살인 사건의 경우 영장이 기각된 후 다시 범죄가 벌어진 경우가 많다. 지난해 2월 벌어진 서울 구로구에서 전 연인 살해사건, 지난해 10월 벌어진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등은 피의자들이 구속영장이 기각 된 후 범행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