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9조원, 하루 평균 거래규모 3조원(2022년 말 기준).
총 625종(중복 제외)이 유통되고 있는 국내 가상자산(코인) 시장 얘기다. 가상자산은 지난 10여년 동안 '무법지대'에 놓여 있었다. 한때 '최악의 투기판' '환경오염의 주범'과 같은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새로운 대체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가상자산이 돈이 된다는 점,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안(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의결했다. 가상자산과 관련해 처음으로 법안이 제정되는 것이다. 지난 4월 말 유럽연합(EU)이 가상자산 포괄 규제법 '미카(MiCA)'를 통과시키고, 김남국 의원에 대한 가상자산 의혹이 불거지면서 부랴부랴 관련 발의안 18개를 뭉뚱그려 만들어냈다.
법안은 이용자의 자산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고객예치금의 예치·신탁 △고객 가상자산과 동일종목·동일수량 보관 △해킹·전산사고 등 사고에 대비한 보험·공제 가입 또는 준비금 적립 등을 의무화했다. 또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나 시세조종행위, 부정거래행위 등을 불공정 거래행위로 규정하고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집단소송까지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제 가상자산이 법의 울타리 안에 들어왔고, 투자자의 안정성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우선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 근거만 있을 뿐 이를 감시할 장치나 시스템이 미약하다. 이대로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불공정행위를 제대로 적발하기 어렵다.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어떤 정보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유통 중인 가상자산 가운데 60% 넘는 389종이 특정 가상자산 거래소에만 상장돼 있다. 하지만 거래소마다 상장기준이나 이상거래 탐지시스템 발동기준이 다르다.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 당시에는 거래소들이 제각각 상장폐지를 결정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킨 바 있다.
산업의 성장과 시장의 혁신을 돕기는커녕 규제만 가득한 '이용금지법'에 가깝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 디지털 경제 시대에 우리의 디지털 자산 결제서비스를 갖기 힘들 것이다. 결국 신용카드에 비자, 마스터가 찍힌 것처럼 다른 나라의 서비스에 종속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상자산 발행·공시 등 시장질서 규제가 포함된 2단계 법안이다.
당초 2단계로 나눠 입법하기로 한 만큼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서둘러 모두에게 환영받는 '가상자산 기본법'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한다. 투자자들이 진정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신뢰할 수 있도록 질서를 구축해야 안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