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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간식처럼 먹었던 '원기소'

[기업과 옛 신문광고] 간식처럼 먹었던 '원기소'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는 허약해진 친구에게 '원기소' 한 병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어느 TV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정혜씨는 내게 원기소 같은 존재예요." 원기소는 여러 글에서 '힘을 북돋워 주는 것'이라는 의미로 흔히 쓰였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중장년층이면 원기소로 영양을 보충했던 기억을 대부분 갖고 있을 것이다. 보리를 누룩곰팡이의 일종인 '황국균'으로 발효시킨 천연제품으로, 요즘의 프로바이오틱스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고소한 맛 때문에 부모 몰래 간식처럼 여러 알을 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렸던 추억의 약이기도 하다. 원기(元氣)는 '마음과 몸의 활동력'이라는 우리말이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건강이라는 뜻으로 쓴다. 원기소는 1955년 10월 1일부터 두달 동안 창경원에서 열린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 출품됐고 그해 11월 24일자 신문(사진)에 첫 광고가 게재됐다. 원기소는 과립제품도 내놓으며 경쟁상품 '에비오제'를 누르고 승승장구했다. 서울약품은 원기소 덕분에 제약회사 순위 3위까지 올랐고 원기소 도매가격이 신문에 고시될 정도였다.

그러나 일동제약의 '비오비타'와 같은 제품들에 원기소도 서서히 밀렸다. 원기소의 마지막 신문광고는 1973년 1월 31일자에서 확인된다. 잘나가던 서울약품이 부도를 낸 것은 1980년 무렵이었다. 사장 박모씨는 부도 후 28개월 동안 도피하다 1982년 1월 붙잡혔다. 원기소 생산도 중단됐다. 그러나 원기소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5년 서울약품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같은 사명의 새 법인을 설립해 원기소 후속 제품을 생산했다. 효능을 강화한 '원기쏘' 등 다양한 제품과 '추억의 원기소'라는 건강기능식품도 내놓았다. 그러나 '종로서적'이 그러했듯이 서울약품의 원사업자와 상표권 분쟁이 붙었다.
지난해 3월 법원은 후발업체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사업자 측이 설립한 것으로 보이는 ㈜원기하우스는 원기소를 계승한다고 밝히며 현재 '원기소 장건강 플러스 멀티 바이오틱스'를 판매 중이다. '원기쏘' '원기쏘 플러스'도 제조원 대한뉴팜, 판매원 서울약품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사상품처럼 유통되고 있어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