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합적 ‘리스크’에 떠나는 14억 시장
- 37개월 만에 최저치 외국인직접투자(FDI)
- 데이터 3법, 반간첩법, 정보 접근 제한 등 규제는 갈수록 강화
- 중국에 '러브 콜' 보내는 기업도 있어
지난 5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 복합쇼핑몰 '지오 월드 드라이브 몰'에 애플 스토어 인도 1호점이 외관 단장을 마친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1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탈중국’ 혹은 ‘차이나 런’을 감행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중국이 자랑하는 14억 거대 내수시장만을 믿기엔 수시로 변하는 중국 정책의 불확실성과 불이행, 자국 기업 밀어주기로 인한 경쟁 심화, 제로코로나 여진, 인건비 상승, 전문 인력 부족, 부동산 침체, 경기회복 부진, 규제 강화 등 감내해야 할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요지부동이다. 상황의 원인을 미국 등 서방국가의 디커플링(탈동조화)에 한정해서 찾는다. 그러면서 일부 데이터 수치만 가져다 쓰며 ‘개방 효과’로 포장하고, 디커플링 반대 등을 외치는 기업에게 혜택을 선택적으로 제공한다. 다만 중국은 외국뿐만 아니라 자국 기업의 탈출도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복합적 ‘리스크’에 떠나는 14억 시장
4일 주요 외신과 중국 매체를 종합하면 현재 중국 매체에 거론되고 있는 철수 외국 기업 명단은 수십 곳에 이른다.
미국 반도체 팹리스 업체 마벨은 상하이 연구개발(R&D) 센터 등의 일부 부서 엔지니어를 철수시키고 있다. 마벨의 중국 내 직원 수는 한때 1000명에 육박했다.
미국 컴퓨터 제조업체 델(DELL)은 중국산 반도체 칩을 의존도를 낮추겠다면서 2024년까지 중국 토종 업체나 외국 업체에 상관없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칩을 모든 제품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컴퓨터 통신 장비업체 휴렛팩커드(HP)도 생산·조립 시설을 중국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 검토하는 등 중국 시장과 분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중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애플은 이제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양상이다. 애플의 최대 생산 협력업체인 폭스콘은 역시 중국 내 인력과 임금을 줄이고 인도로 사업의 무게 축을 이동시키고 있다. 폭스콘의 전략 변화는 애플 산업체의 이전이다. 애플은 인도에서 아이폰을, 베트남에서 아이패드와 에어팟 등 다른 제품군을 주로 생산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전자책과 앱스토어 사업 , 구글의 번역 앱 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문가 네트워킹 소셜미디어인 링크트인 등도 줄줄이 사업을 중단했다.
경제관찰보는 “지난 1·4분기 미국 제조업체들의 대규모 복귀로 애플, 델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라인을 잇따라 철수한다고 발표했다”면서 “해관총서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제조 주문건수가 40% 가량 감소했으며 유럽 기업들도 짐을 싸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을 떠나는 기업은 미국 혹은 특정 산업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일본 통신장비 제조업체 오키전기(OKI)는 중국 내 프린터와 복합기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라인을 태국으로 옮겼다. 또 일부 정비 부품 공장은 일본 후쿠시마 공장으로 돌려보냈다.
일본 캐논은 주하이 공장을 폐쇄했고, 소니는 올해 중국 카메라 생산라인을 태국으로 이전했다. 야후 중국은 더 이상 야후의 제품 및 서비스를 중국 본토에 제공하지 않는다. 도시바는 2021년 다롄 마지막 공장 문을 닫았다. 새 공장은 베트남과 일본에서 시작한다.
파나소닉은 랴오닝성 선양 배터리 법인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업체는 향후 몇 년 안에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으로 생산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 테스코(TESCO)는 2020년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다고 공지했다. 프랑스의 대형 슈퍼마켓 브랜드 까르푸는 아직 중국에서 영업 중이지만 이미 지분 대부분을 중국 유동업체인 쑤닝 그룹에 매각했다. 사실상 철수한 셈이다.
네덜란드 필립스는 가전 사업을 유명 투자회사인 힐하우스캐피털에 매각하고 중국 가전 시장을 떠난다고 결정했다.
영국 ‘톱숍’, 미국 ‘아메리칸 이글’과 ‘포에버 21’, 덴마크 ‘셀렉티드’, 네덜란드 ‘C&A’와 프랑스 ‘까쉐까쉐’, 독일 유명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등 브랜드는 오프라인 매장 중단, 지분·사업 매각 형태로 짐을 꾸렸다.
비야디 전시장. 사진=연합뉴스
37개월 만에 최저치 실질 FDI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의 실질 외국인직접투자(FDI)액은 4994억6000만위안(약 92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2% 증가하는데 그쳤다.
중국의 월간 누적 FDI 증가율은 2021년 1~2월 31.5% 이래로 줄곧 두 자릿수로 증가하다가 작년 1~11월 한 자릿수인 9.9%로 떨어졌다. 올해 1월 14.5%로 ‘반짝’ 상승했으나 다시 3개월째 한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1~4월 2.2%는 2020년 7월 0.50% 이래로 37개월 만에 최저치다.
FDI는 단순히 외국인 자본을 투입하는 아니라 경영 참가와 기술 제휴 등 경영권 통제를 통해 이윤을 얻는 국제직접투자의 한 형태다. 실질 FDI이기 때문에 양 당사자가 투자키로 합의한 뒤 현금, 물자, 무형 자본 등 실제로 사용하는 금액을 말한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대중국 견제가 강화되고 중국 내 전체적인 직원 급여 수준도 상승하면서 중국 기업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는 신에너지차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베트남에 2억5000만달러(약 3313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비야디 자회사인 비야디 전자는 이미 베트남에 연간 432만5000대의 태블릿 PC와 5000만개의 광학렌즈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갖고 있다.
KUKA와 록텍, 메이커가구, 헝린의자 등 중국 본토 가구 업체들도 베트남에 공장을 세웠다. 폭스콘, 입신정밀, 윈스턴, 화슈오, 커얼, 만와홀딩스, 용이펀드 역시 공장을 두고 있다.
창강 삼각주의 한 태양광 모듈 업계 임원은 “절삭공구, 알루미늄 제품 등 모든 업종의 중국 기업이 베트남에 다 있다”고 말했다.
증권시보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 중국보다 베트남의 인건비와 에너지 소비 비용이 낮다는 점을 베트남 진출의 장점으로 뽑았다. 또 베트남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중국산을 배척하는 미국과 유럽 수출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동남아 시장 확대도 상대적으로 쉽다.
3년여 만에 중국을 방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왼쪽)가 5월 30일 베이징에서 열린 회의 도중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중국 외면 요인은 ‘수두룩’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중국에서 등을 돌리는 요인은 수두룩하다. 외국 기업들은 무엇보다 ‘겉과 속이 다른’ 중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 중국 지도부들은 수년 전부터 ‘약방의 감초’처럼 외국인 투자 촉진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대부분은 ‘재탕’, ‘삼탕’의 백화점식 나열에 불과하다. 해마다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제시하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은 그러면서도 외자 기업이 불만을 토로해온 지식재산권 보호, 강제기술이전 금지 등 공정거래와 관련되거나 반독점법, 외국 기업 블랙리스트 제도 등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사이버보안법, 데이터보안법, 개인정보보호법은 중국을 떠나는 핵심 배경 중 하나다.
중국은 자국의 정보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넘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업체 디디추싱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고 하자, 전방위 제재로 회사를 추락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외국기업도 동일하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와 정보는 원칙적으로 국외 반출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국내 A기업이 중국 현지에서 노동자 1000명을 채용해도 이력서조차 한국 본사로 보내 검토할 수 없다. 고객관리, 재무·영업 상황 문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를 어기고 적발된 경우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중국에서 기업하지 말라’는 의미와 같다”면서 “결국 외국 기업이 중국인을 상대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중국 주식이나 중국 기업들에게 투자를 한 뒤 해당 중국 기업을 성장시켜서 이익을 가져가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에는 중국판 블룸버그 터미널로 불리는 시장조사기관 ‘윈드’(WIND)가 외국인 사용자들에게 정보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윈드에서 전자상거래 추세, 위성사진 등을 외국인에게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반간첩법 개정안’을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한다. 핵심은 간첩 행위의 범위를 대폭 넓혔다는 점이다. 비밀 정보를 넘기는 구체적인 행위가 적발되지 않아도 교류가 있는 기관이나 인사가 ‘간첩’ 또는 ‘간첩 대리인’으로 규정될 경우 함께 처벌한다.
또 빼돌리면 처벌받는 기밀의 범위에 ‘기타 국가 안보와 이익과 관련된 문건, 데이터, 자료, 물품’을 넣었다. 이로써 법적으로 ‘비밀’로 분류되지 않은 자료라도 유출할 경우 처벌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기업의 경영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경제의 팬더멘탈(기초체력)이 여전히 강한 반면 철수 기업 대부분이 의류 생산, 전자제품 조립 등 노동집약적 업종으로 평가 절하하는 분위기다. 자국 경제 주체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을 찾는 기업도 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 세계 최대 커피 체인업체 스타벅스의 새 CEO 랙스먼 내러시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CEO 등은 최근 잇따라 중국을 찾아 애정을 과시했다. 3월 말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 때는 팀 쿡 애플 CEO와 퀄컴, 화이자, 코닝 등 글로벌 기업 100여명이 중국 정부 및 재계 인사들과 교류했다. 중국 상무부는 올해는 ‘중국 투자의 해’로 정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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