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뉴스1 DB /사진=뉴스1
“저 앞까지만 차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파이낸셜뉴스] 검사 시절 처리한 사건이다.
한밤에 길거리에서 술 취한 여성이 도와달라고 한다. 낯선 여자다. 젊고 예쁜데, 얇은 옷차림은 흐트러졌고, 몸은 비틀거린다. “저 앞까지만 차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어떤 남성에게 부탁한다. 남성은 머뭇거리다가, 낯선 여자를 차에 태웠다. 허걱!! 그녀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남성은 당황스럽고 곤란하다. 한참을 그대로 있으며, 그녀가 잠 깨기를 기다린다. 만세!! 드디어 일어났다. 그녀를 내려주고, 남성은 갈 길을 갔다.
"나를 때리며 강간하려 해" 영장 신청된 순진男
그후, 이 남성(이하 ‘순진男’)은 강간치상으로 신고되어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 낯선 여성은 “이 남자가 나를 때리며 강간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상해 진단서와 상처 사진이 있었다. 순진男은 “그런 적 없다”며 펄펄 뛰었다. 목격자는 없다. CCTV도 없다.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도 없다. 오직 당사자들의 말 뿐이다. 진실은 당사자만 안다. 검사와 판사는 모른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검사와 판사는 진실을 가려야 한다. 어떻게? 증거를 살펴서 진실을 ‘판단’한다(증거 재판주의). 여성과 남성의 진실 게임이 벌어진다. 누가 이겼을까?
이런 사건에서 통상은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이긴다. 증거 판단의 기준은 상식(=사회통념)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남성의 주장이 맞다면, 여성은 처음 보는 남성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무고한 것이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을 무고할 이유가 있을까? 없을 것 같다. 한편,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피해 여성은 안 좋은 소문과 평판으로 고통받을 수 있고(2차 피해),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성범죄 피해가 없었는데, 신고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는, 여성의 피해 진술이 사실일 것이다. 게다가, 피해 진술이 일관되고 매우 구체적이며 생생하다. 실제로 피해를 입지 않고 이렇게 진술하기는 어렵다. 결국, 검사와 판사는 여성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떻게 될까? 구속되고 실형을 받는다. 성범죄로 한 여자 인생을 망쳐놓고 범행을 부인하는 ‘나쁜 놈’이다. 그냥 두면, 여성에게 2차 가해할 수도 있다. 감옥에 가둬둘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성범죄 사건의 통상적 결말이다.
"손발로 맞았다"는데 '각목' 자국
하지만, 필자(당시 검사)는 순진男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 여자 진술은 이상했다. △상해 진단서와 상해 사진이 피해 진술 및 상황에 부합하지 않았다(A 피해를 입었으면, A 상처가 있어야 하는데, B 상처가 있었다). △사진 속의 허벅지 멍 자국은 몇 개의 평행선을 연달아 그리고 있었는데, 사람 손발로 맞은 것이 아니라, 각목으로 맞은 것 같았다(그런데, 각목으로 맞았다는 진술은 없었다). △피해 전후 상황, 신고 경위에 대한 그 여자의 진술은 그 자체로 어색했다. 필자는 그 여자의 진술을 더 검증한 후, 혐의 성부를 판단함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경찰에 검증할 사항을 알려주며 보완 수사하도록 했는데, 그 여자는 더 이상 연락되지 않았다. 경찰은 검찰에 이 사건을 송치했고, 필자가 배당받았다.
'피해녀'라는 여성은 범죄전과까지...
그 여자는 필자의 소환 조사에도 불응했다. 필자는 더욱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 여자의 범죄경력을 확인해봤다. 정상적인 성관념을 가진 여성인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전과가 발견되었다.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는 시간을 전후해 통화내역도 확인했다. 성범죄 피해 직전, 직후에 어떤 남성과 계속 통화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남성도 조사받기를 거부했다. △진단서 발급 의사의 진술도 들어봤다. 의사에게 진술한 상해 경위가 피해 진술과 미묘하게 달랐다. 필자는 속칭 ‘꽃뱀’이 합의금을 노리고 무고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순진男은 무혐의 처리되었다. 그 여자의 꽃뱀 게임은 무고죄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끝났다.
성범죄는 무섭다. 피해자에게 평생의 상처를 준다. 혐의를 부인하기도 무섭다. 상대방을 꽃뱀이라고, 무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혐의가 인정되면 정말로 골로 간다(무거운 실형 선고). 성범죄로 무고해도 실형이 난다. 그런데, 증거는 말과 정황뿐이다. 그래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억울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검사도, 판사도, 변호사도, 당사자도, 이런 상황이 너무 부담스럽다. 결과가 무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승패가 갈라진다. 우리는 진실이 이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끔은 진실도 진다. 특히, 다툼 있는 성범죄 사건에서, 한발 잘못 디디면, 진실이 지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탁월한 전략이 없으면, 진실을 세울 수 없다. 위기라면, 전략을 세우자. 아울러, 조심하고, 현명하자.
[필자 소개]
김우석 변호사는 청와대 파견, 정부 합동 반부패단 총괄국장, 서울중앙지검, 지청장 등을 거친 매서운 검사였다.
검사실에 사람이 들어오면, 구속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따뜻하고 인자한 변호사다. 매일같이 선처받을 방법을 고민한다고 한다.
김우석 변호사(법무법인 명진 대표)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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