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면 종주국 日 울린 농심 신라면 - 김대하 농심재팬 사장 인터뷰
2000년대초 시식회서 만난 바이어
"사람이 먹을 게 아니다" 혹평에도 신춘호 선대회장 뚝심대로 밀어붙여
적극적 시식 마케팅 구매로 이어져
‘한국코너’ 아닌 메인 ‘라면 코너’로
K푸드 열풍, 장기적 정책 동반돼야
김대하 농심재팬 사장이 지난 12일 도쿄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경민 특파원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박소연 기자】 일본은 남북으로 3000㎞가량 뻗어 있는 열도다. 서울-부산(400㎞) 거리보다 7~8배는 긴 이 나라에,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최남단 오키나와까지 농심 '신라면'이 진열되지 않은 곳이 없다. 아니 '신라면 열풍'이 불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 더 맞다.
"(최남단) 가고시마현 시골의 작은 슈퍼에서 신라면을 우연히 발견했을 땐 정말 뭉클했다. '내가 뭔가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하 농심재팬 사장의 말이다. 라면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라면으로 열풍을 불어일으킨 신화를 일군 주인공이다.
김 사장은 지난 12일 도쿄 농심재팬 사무실에서 본지와 단독인터뷰를 갖고 신라면의 성공 비결에 대해 "첫째도 브랜드, 둘째도 브랜드, 셋째도 브랜드"라고 강조했다. 신라면을 '한국의 매운 라면'이 아닌, '맛있게 매운 라면'으로 각인시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지난 1993년 해태 상사맨으로 일본 생활을 시작한 김 사장은 올해로 일본 주재원 생활 31년 차를 맞았다. 올해 64세로 정년을 훌쩍 넘긴 그는 현지 한인 사회에서 '주재원의 전설'로 불린다. 소싯적 함께 현장을 누볐던 타사의 과·차장 후배들이 법인장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일본에서 '매운 라면' 시장은 사실상 농심이 개척했다. 농심은 연간 6조5400억원 규모의 일본 라면 시장에 신라면을 통해 한국 라면의 특징인 매운맛을 처음 전파했다. 후발 주자들이 따라붙으며 이제 6조원 라면 시장의 6% 정도인 3600억원은 매운맛 라면이 차지하고 있다. 그 중 1위는 우리의 신라면이다. 매운 라면만 떼놓고 보면 시장 점유율이 28%다.
없던 시장을 만들었는데 우여곡절이 왜 없었을까. 김 사장은 "2000년대 초 규슈 지역의 바이어가 신라면을 두 스푼을 먹고 1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손수건을 꺼내 계속 닦더라. 다른 한 바이어는 시식회에서 신라면을 먹어보더니 집어 던지기도 했다. '이건 사람이 먹을 게 아니다'면서..."라고 힘든 초창기 시절을 회고했다.
김 사장이 순한 맛으로 승부를 보자고 본사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신춘호 선대 회장은 뚝심을 꺾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맛은 절대 바꾸지 말라'는 게 신 전 회장의 의지였다. 신 전회장의 감각은 옳았다.
결과적으로 신라면은 가장 한국적인 맛으로 일본을 사로잡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2년 설립된 농심재팬은 2008년 흑자로 전환했다. 한일관계 악화로 적자에 빠지기도 했지만 2013년부터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그동안 쌓아둔 브랜드가 힘을 발휘하며 2016년 30억엔대였던 매출은 매년 앞자리가 바뀌며 2019년 70억엔을 넘었다. 코로나가 본격화된 이후엔 더 치고 올랐다. 2020년 90억, 2021년 110억, 지난해엔 120억엔을 달성했다.
김 사장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김 사장은 초창기 런칭부터 지금의 농심 신라면이 있기까지 어려웠던 순간을 극복한 에피소드와 K푸드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차근차근 비법을 풀어놨다.
―열도 전체가 그야말로 K푸드 열풍이다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한다. 우리나라 정책담당자들이 너무 자주, 많이 바뀌어 안타깝다. 분위기를 타고 K푸드 열풍이 불어도 결국 마지막에 자리를 차지하는 건 일본이다. 김치만 해도 그렇다. 각종 페어에 한국 중소기업들이 앞다퉈 김치를 가지고 들어오지만 품질관리가 생명인 이 나라 유통 구조 상 오래 못 버틴다. 결국은 김치라는 이름을 달고 상품을 판매하는 건 다 일본 회사 제품이다. 지금도 마트 정식 김치 판매대에서 톱3을 차지하는 건 다 일본회사다.
―K푸드 붐은 한시적인 현상인가
▲우리한테 달렸다.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국음식이 좀 팔린다고 하니 이것저것 갖고 와서 팔기 바쁘다. 그러면 안 된다. 대표 주력 제품을 앞세워 일본 식문화에 젖어 들어야 한다. 신라면도 처음엔 적자였다. 하지만 한 번 브랜드를 새기니 코로나 같은 위기 때도 매출이 계속 우상향했다. 힘들더라도 지나고 보면 브랜드가 된다.
―신라면은 현지화로 성공한 게 아니지 않나.
▲맛은 지켰지만 브랜드 전략은 철저히 현지화했다. 유통사들의 '한국 코너'가 아닌 메인 '라면 코너'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무조건 먹여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키친카(푸드트럭)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맛 체험 마케팅을 오랫동안 해왔고, 시식 이벤트는 무조건 참석했다. 점내 시식 판매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먹으면 구매로 이어졌다. 우리가 매운 라면 시장을 열었을 때, 일본 1위 라면회사인 일청식품(닛신)이 신(辛)을 그대로 쓰는 '신면'을 출시했다. 처음엔 긴장했지만, 시장이 커지는 건 우리한테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 제품을 믿었고 맛을 믿었다.
―포스트 신라면은 무엇인가.
▲너구리, 짜파게티, 후루루(둥지) 냉면을 포함 농심재팬 현지 법인의 자체 브랜드인 코리코레까지 총 5개의 중점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신(辛)'이라는 브랜드 자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오는 8월 '신볶음면 치즈맛'이란 신제품이 나온다. 초도 납품 예정 수량만도 100만식(컨테이너 약 33대 분량)이다. 세븐일레븐·패밀리마트·로손·미니스톱 등 주요 대형 편의점 4사에서 동시 판매 예정이다. 일본 즉석면 업계에서도 상당히 보기 드문 성공사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가 급속히 개선됐다.
현장 분위기는.
▲최근 시장 분위기 상당히 좋다. '장사의 키'인 일본 유통업들이 한국 페어를 공식적으로 못 하다가 저마다 한국 페어를 한다. 또 오랫동안 한류 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적인 측면이 정치적인 면을 융화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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