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
일·가정 양립 지원책 속속 내놔
여력없는 中企 인력난 심화 우려
올 들어 인구문제 해법에 기업의 이름이 빈번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2006년부터 280조원가량의 재정을 투입한 정부까지 실패해 인구쇼크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기업은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는 하다. 하지만 인구문제 악재에서 벗어날 혁신을 정부에만 맡길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측면도 있다. 혁신에 익숙한 기업이 나설수록 인구문제를 풀어낼 확률은 높아진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기업은 해결 능력·이해관계·혁신 경험을 두루 갖췄다. 인구 증가가 성장으로 이어지고, 감소가 사회 퇴조라고 한다면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는 기업에도 발등의 불이다. 인구가 없고, 소비가 급감한 사회에 기업만이 독야청청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19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일부 기업은 적극적으로 저출산대책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 수준을 훨씬 웃돈다. 대표적인 곳은 국내 1위 건설사업관리(PM) 기업인 한미글로벌이다. 셋째를 낳으면 특진을 시켜준다. 사내엔 결혼추진위원회가 있다. 자녀가 있는 신입사원 지원자에게는 가산점을 주고, 아이가 있는 직원은 2년 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한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이 앞장서야 한다는 김종훈 회장의 철학이 반영됐다. 김 회장은 "(인구쇼크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사회와 기업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미글로벌은 주거 문제, 일·가정 양립 문제까지 사내 정책을 통해 지원해 준다. 결혼을 앞둔 구성원은 기존 무이자 5000만원에, 추가로 2% 금리의 5000만원 사내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일과 육아의 조화를 꾀하기 위해 유연근무제도도 도입한다. 만 8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구성원은 2년 동안(2자녀 이상 최대 3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 현대차·기아 등 주요 대기업도 기업 특성에 맞는 저출산대책을 내놓고 있다. 핵심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기업의 역할 정립과 지원 확대다. 이는 그동안 저출산대책을 추진해 왔음에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가족 형성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 많아서다. 난임지원 등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마무리된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을 근로기준법 기준보다 확대해 임신 전체 기간에 적용하기로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로 한정하고 있지만 12~36주 기간에도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5월부터 삼성전자처럼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전 기간으로 확대·적용해 운영 중이다.
난임휴가 추가 지원 등 난임치료 지원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유급 형태의 5일의 난임휴가 제도가 있다. 현대차·기아, LG전자도 3일의 유급 난임휴가가 있다. 신세계, CJ, LG에너지솔루션은 최대 6개월 난임휴가제도를 시행 중이다.
일·가정 양립 제도도 선보이고 있다. 근무방식을 바꾸고 육아휴직을 늘리는 형태다. 포스코는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은 누구나 하루 종일(8시간) 또는 반일(4시간)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육아기 자율근무제'를 도입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를 둔 직원에게 근무시간,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형태다. SK이노베이션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통해 9세 이하 자녀 1명당 최대 1년간 하루 4시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입학자녀를 위한 최대 90일 돌봄 휴직(무급)도 가능하다.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롯데그룹은 남성 직원도 휴직을 꺼리지 않도록 첫 달에는 통상임금과 정부 지원금의 차액을 전액 지급한다. 현대백화점은 남성직원이 육아휴직을 하면 최대 3개월간 통상임금과 정부 지원금의 차액을 회사가 보전해 준다. 만 8세 이하 자녀의 등하교를 위해 2주~1개월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출산, 양육, 나아가 정년연장까지 기업이 나서는 것은 근무여건을 선진화하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저출산·고령화 극복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경영 측면에서 과도한 비용 증가는 투자활력을 약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또 다른 양극화를 심화시켜 만성적 인력난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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