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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경기민요 명창들이 뿔난 이유

[기자수첩] 경기민요 명창들이 뿔난 이유
갈등 해결의 기본 자세는 대화다. 만나서 상대의 정확한 의도나 취지를 듣지 않는다면 수긍도, 협상도 어렵다. 이 원칙은 개인 간의 불화는 물론 기업 간의 분쟁, 정부 부처의 민원 처리 등 모든 대소사에 해당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상대와의 진솔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처결하는 모양새의 정부 부처가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 예고를 앞두고 시끌시끌한 문화재청 얘기다.

최근 문화재청이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를 특정 명창으로만 인정 예고하자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소리가 다르다는 점으로 여러 계파의 다양성이 인정돼왔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이 경기민요의 맥을 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문화재청은 과거에도 계파별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며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본지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경기민요는 1975년 7월 12일 지정 당시 유파별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3명의 보유자가 복수로 인정돼 지금까지 전승돼 왔다"며 "이번 인정 예고 대상자가 되지는 못했으나 묵계월·이은주 선생의 제자 3명이 전승 교육사로서 활동하며 이수자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수자 이상 전승자들이 전승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한 지원사업 혜택이 아닌, 오랜 세월 내려온 계파의 전통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계파가 왜 분파됐는지, 소리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양측의 대화가 없었고, 전통이 묵살된 채 통보로 권위가 박탈됐다고 이들은 억울해한다.


취재 결과 실제로 묵계월 유파는 적벽가·선유가·출인가·방물가를, 이은주 유파는 집장가·평양가·형장가·달거리를, 안비취 유파는 유산가·제비가·소춘향가·십장가를 전승 교육해왔다. 전승자들도 서로 간 전수 범위를 인정해왔다. 수천명의 경기민요 전승자와 수만명의 일반 전승자의 운명이 달리기도 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일방적인 행정통보가 아닌, 갈등 해결을 위한 심도 있는 '대화의 장'이 마련돼야 할 때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문화스포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