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前 천안함장)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술·담배에 의지하며 겨우겨우 버텨… 58명 생존 전우를 위해 연구소 설립
정치분쟁 도구로, 음모론자 공격에 개탄
"천안함·장병은 대한민국과 국민 지켰다... 이들은 합당한 예우·보상받을 자격 충분"
연합뉴스
지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은 백령도 남서쪽 약 1㎞ 지점을 항해 중이었다. 함미와 함수를 점검하고 함장실로 돌아온 최원일 함장은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함장실로 바닷물이 들어와 목 밑까지 차올랐다. 대원들이 문의 잠금쇠를 소화기로 부순 덕에 최 소장은 함장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최 함장이 점검했던 함미는 함정이 두 동강 나 보이지 않았다. 적의 추가 공격이 우려됐다. 최 소장은 부상장병에 대한 응급처지와 함내 구조활동을 지휘했다. 즉시 인원점검을 했지만 이미 문제가 커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는 "점호하면 당연히 승조원 총원인 '104'라는 구호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58'에서 계속 멈췄다"고 말했다.
■"이제는 심리적 어뢰에 당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3일 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전 천안함 함장·사진)을 서면 인터뷰했다. 최 소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군복무를 계속 하다 2021년 2월 28일 예비역 해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는 매일 아침 천안함 승조원 104명의 이름을 가슴에 꾹꾹 눌러 새긴다고 했다. 최 소장은 지난 2일에도 서울 영등포 아트홀에서 구민들에게 천안함 폭침사건을 생생히 전달했다. 그의 연구소 앞에 붙는 '326'은 천안함 폭침사건이 벌어진 3월 26일을 의미하는 숫자다.
그는 이제 군복을 벗었지만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여전히 북한이 주적이지만 천안함 음모론자들과도 고통스러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현충일을 앞두고 '천안함 자폭설' 주장이 나온 데다 한 당의 수석대변인으로부터 "부하를 다 죽였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최 소장은 음모론자의 공격을 '심리적 어뢰'라고 표현했다. 그는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면 북한이 불편해하고 한반도 평화가 깨진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언제까지 전사자는 자폭과 경계실패, 생존자는 패잔병이 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최 소장은 폭침 이후 3~4년간을 술과 담배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전장에서 전우들을 두고 살아남았다는 아픔 때문이다. 살아남은 그의 승조원들도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사지에서 돌아와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음모론, 경계실패 같은 말이 나오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진다"면서 "하지만 술과 담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2010년 3월 26일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결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권토중래'와 '와신상담' 글귀를 책상 위에 붙여 놓고 적을 향한 복수의 칼을 갈았다. 폭침 사실이 세상에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자료들을 정리하며 절치부심해왔다고 한다.
■"나라 지킨 사람들 합당한 예우, 보상받아야"
최 소장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섰다. 천안함 생존장병 58명과 함께 지난해 3월 사단법인 326호국보훈연구소를 세웠다. 그는 "천안함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장병 58명은 동료를 두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피격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며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58명의 전우를 지키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6월 기준으로 전역한 천안함 생존장병은 35명이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일부 인원은 당시의 트라우마와 진료기록 등 절차적 서류를 갖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최 소장은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절차가 나라마다 다른데 미국의 경우 국가유공의 증거를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입증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면서 "군인이 스스로 진료기록 등 모든 기록을 준비해 신청해야 하지만 현역 군인의 진료여건도 녹록지 않고 제반 기록을 유지하고 제출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꼭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신 생존장병 중 일부는 그 뒤에 배를 탈 기회가 줄기 때문에 진급점수가 없어 진급이 쉽게 되지 않았다"면서 "이 때문에 전역하면 유공자가 되기 어렵고, 유공자가 돼도 정신과 이력으로 취업이 힘든 점도 나라에서 꼭 알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는 "'호국보훈'이란 말 그대로 나라를 지켰던 분들이 합당한 예우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우리는 '과연 이분들에 대해 적절한 보훈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사건이 정치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데 대해서도 개탄했다.
그는 "천안함과 천안함 장병들은 어느 특정 지역과 정당을 지키던 배와 군인들이 아니었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지키던 배였고, 군인들이었다"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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